[주연] 내가 만난 사람들 (1)

작성자  
   kokids ( Hit: 191 Vote: 5 )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777번 좌석버스. 날은 그리 춥지 않았다.
다만, 어제부로 오른 좌석버스 요금 때문에 150원이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동전 반환통도 사라졌다. 이제는 계산하기 쉽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 설마 1만원짜리 지폐를 내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아마도 조만간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집까지 가는데는 밀리지만 않는다면 이십여분이면 도착한다.
그 와중에 안양과 수원의 경계인 파장동 부근. 이곳에서
가죽잠바 입은 남자. 승차한다.

가죽잠바를 입고, 머리를 곱슬이었으며, 얼굴과 몸집은
이재포-개그맨이자 탤런트로 복수혈전에 출연중이지 않던가-와
매우 흡사했다. 그는 무언가 가득한 가방을 들고 있었다.

승차하자마자, 어라.. 돈을 안내는 것이었다.
그는 곧바로 운전기사에게 인사를 하고는, 익숙하지 않은
몸짓과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인천에서 어찌어찌한 사건-자세히는 듣지 못하였으나
아마도 조폭(조직폭력)과 관련한 것 같았다. 혹시 모르겠다.
그가 살인을 했을지도-으로 교도소에 7년간 복역하였다는
말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그는 안에서 배운 기술로
변변한 직장을 구해보려했으나, 전과자라서 받아주지 않고
해서 지금은 이런 신세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물건을 들고 나왔다고 했다.

그가 들고 나온 물건은 대나무로 만든 신발 밑창(흔히 깔창이라
하고, 그도 신발 깔창이라고 지칭했다.)이었다.
그는 한참 대나무가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 대나무 깔창에는
350여개의 구멍이 있어 통풍에도 좋으며, 신기만 하면
마치 해변을 걷는 것 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분명 초보임에 틀림없었다. 그 넓은, 기차 한 칸에
최대 7백명을 수용하는 지하철을 놔두고 사람도 없는 버스
안에서 장사가 될리는 내가 생각해도 만무한 것이었다.

어쨌든 버스는 비교적 공포 분위기였다. 왜냐면, 솔직히
그러면 안되겠지만 이미 그가 전과자로 7년을 복역하고
만기출소했다는-그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무슨 죄로
들어갔는지도 설명했다. 나는 잘 듣지 못했지만-말로
한 자락 깔고 들어갔기 때문에, 안 사면 뒤에서 칼로 쑤실
분위기였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는 이런 깔창이 왠만한 곳에서 한 짝에 6천원하지만,
이 버스 안에서는 특별히-그는 이 특별히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했다-한 짝에 그 반 값인 3천원에 드리고 두 짝을
사면 5천원에 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제는 장사를 벌일 시간, 그는 자리마다 그 '물건'을
들이대고 사줄 것을 애원했다. 나보다 최소 열 살은 많아
보이는, 게다가 왕년에 조폭이었던 그 아저씨는 5천원 짜리
깔창을 위해 나에게 '형님'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
그는 지난 시절, 그의 후배 조폭들에게 형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녔을 것이다...

그는 말 중간중간마다 뒤의 아주머니가 두 개를 산다며
매우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내 생각에는 그 버스 안에서
아무도 안 산 것 같았다.

그가 내가 앉은 자리로 왔다. 운전 기사의 뒤의 뒷 자리 창가에
앉은 나. 내 옆엔 왠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견본 깔창(?)을
안보는 눈치자 나에게 달려든다.

" 형님, 이거 봐요. 깔창. 이거 좋아요. 자자.. 이걸 이렇게
까보면 대나무 보이죠. 노래 소리가 난다니까요. 랄라라~..."

그는 매우 애처로워 보였다. 이 깔창이 인공지능이었을까.

그는 빨래판을 문지르듯 깔창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의 생계 수단인 이 깔창팔기에 전심전력을 다
하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

그는 내가 살 기미를 안 보이자, 이렇게 이야기한다.

" 2천원만 줘요. 2천원. "

" 없어요. 정말 없어요. 1천원 짜리 한장도 없어요. 정말
사드리고 싶은데 정말 없네요. "

사실 거짓말은 아니었다. 1천원 짜리는 단 한장도 없었다.
내 수중엔 1만 2백 8십원이 전부였다. 그럼 1만원 짜리를
내는 것은 어땠을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때의 그 분위기에서는 1만원 짜리를
내면 거스름돈을 못 받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가격과 비교할 때 터무니없는 비싼 가격이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는 결국 다른 자리에 가서도 나에게 했던 행동을 그대로
반복했고, 결국 한 개도 못팔고 맨 앞자리로 돌아와서
주섬주섬 챙겨넣기 시작했다.

그는 세 정거장을 가서야 내렸다. 그 정거장에서는 공교롭게도
술취한 아저씨 둘이 타게 되었는데, 까딱하다가는 깔창
못판 아저씨에게 맞을 뻔 했다. 자세히는 보지 못하였으나
몇 개의 상스런 욕-'어머 이 미운 사람아..' 보다 좀 더 나쁜
몇 가지 욕들-이 오가고, 깔창 팔던 아저씨는 얼굴을 있는대로
우그러뜨린채 내렸으며, 버스는 다시 떠나기 시작했다.

그는 아마도 아직 붐비는 777번 좌석 버스에서 깔창을 팔고 있을
것이다. 그의 장사가 잘 되길 빈다.

- 생활 속의 작은 기쁨을 그대에게..주연.


본문 내용은 9,912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Post: https://achor.net/board/c44_free/19949
Trackback: https://achor.net/tb/c44_free/19949

카카오톡 공유 보내기 버튼 LINE it! 밴드공유 Naver Blog Share Button
Please log in first to leave a comment.


Tag


 28156   1482   477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   댓글들에 오류가 있습니다 [6] achor 2007/12/0856438
19112   [밥벌레] 헤어진 다음날.... peridote 1998/01/17151
19111   [ *''* ] 음..정말 오래간만에... angelh 1998/01/17165
19110   과연 예정된 미래란게 있을까? kkokko4 1998/01/16191
19109   [주연] 활력. kokids 1998/01/16157
19108   [주연] 내가 만난 사람들 (1) kokids 1998/01/16191
19107   [정영] 安貧樂道 kkokko4 1998/01/16152
19106   [정영] 반복되는 삶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kkokko4 1998/01/16168
19105   [더드미♥] 오빠를 위하여.. alteru2 1998/01/16164
19104   [달의연인] 8월의 크리스마스 cobalt97 1998/01/16212
19103   [더드미♥] 27131글 헐리우드 alteru2 1998/01/16159
19102   (아처) 1998 겨울여행 취소 achor 1998/01/16154
19101   [주연] 영화로 인해서 알게된 사실(속편) kokids 1998/01/16158
19100   [주연] 영화로 인해서 알게된 사실(II) kokids 1998/01/16156
19099   [주연] 영화로 인해서 알게된 사실(Orig) kokids 1998/01/16155
19098   [주연] 여행 번개 취소. kokids 1998/01/16154
19097   (아처) 무제 27 achor 1998/01/16214
19096   (아처) LEGENDS of the JANUARY achor 1998/01/16204
19095   (아처) 신의를 중시하는 호겸에게 achor 1998/01/16183
19094   [주연] 언제까지나 kokids 1998/01/16163
    473  474  475  476  477  478  479  480  481  482     

  당신의 추억

ID  

  그날의 추억

Date  

First Written: 02/26/2009 00:56:26
Last Modified: 08/23/2021 11:4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