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위에서 붕어는 당당하게도 내게 물을 요구한다는
듯이 몸을 뒤척이며 껄떡거리고 있었다. 어랏? 붕어주
제에 껄떡거리네?, 난 칼을 들고 그 붕어를 바라보다
가 문득 색색가지의 한 마리 말을 생각하였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 앞에서 마음껏 뛰어다
니는 한 마리의 말! 그 위풍당당한 말의 몸은 무지개
빛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그 위에서는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한 하얀 실크로 몸을 감싼 꽤나 매력적
인 여인이 말의 몸을 애무하고 있다. 지난 밤 '애마부
인'을 너무 인상깊게 봤나? 흐흠. --;
"여보! 도대체 지금 뭐하고 있는 거예요! 나 지금 배
고파 죽겠단 말이예요!"
헉. 또 바가지로군. --;
내가 이처럼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유는 지난 시
절의 내 어리석음에 있다. 혹시 아직까지 결혼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결혼에 대해 막연한 환상과 희망을 갖
고 있는 머저리들을 위해 한마디 하자면, "결혼은 현
실"이란 말을 잊지 않도록! 아! 사랑은 짧고, 백수의
길은 이토록 멀고 험하단 말인가! !_!
내 꿈은 어렸을 때부터 전업남편, 소위 셔터맨이었다.
이건 시대에 대한 저항이라고 난 철저히 믿어왔다. 가
부장적 사회에 대한 저항! 난 내 스스로 내조를 함으
로써 사람들의 편견에 도전하려 했고, 또 충실히 신랑
수업을 교육받았다.
사람들이 최초로 나를 色魔라고 부르게 된 원인이었던
나의 '가정학과' 입학이나 명문 요리학원 수석졸업 등
이 그 증거이다. 그렇지만 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
다. 내 주위의 인간들이 나를 색마라고 하든 말든.
난 그렇게 꿈에 그리던 셔터맨이 되었으나 사랑은 모
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내가 바보였다. 사
랑은 내 생각만큼 절대적이지 않았다. 결혼 2년, 권태
기가 조금씩 찾아들 무렵에 비로소 아내는 내 무능함
을 탓하며 날 구박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난 아내가
무섭다. 툭하면 때린다. 흑. !_!
그리하여 이렇게 난 붕어 스파게티를 하고 있는 게다.
내 아내는 특이한 인간이라서 항상 새롭고 특이한 것
만 찾는데 그런 아내 곁에서 내가 2년씩이나 버티고
있는 이유는 내 환상적인 요리솜씨에 있다고 믿는다.
내가 가장 잘 하는 요리는 스파게티로 며칠 전 친구의
"여자와 북어는 두들겨 패야 맛"이란 말을 그대로 믿
고 뒤에서 몰래 다가가서 아내 뒤통수를 때렸다가 죽
도록 얻어맞았기에 아내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일종의
특식인 셈이었다.
"거의 다 되어가. 조금만 더 참아줘. (제발!) 내가 맛
있게 요리할 테니까!"
그렇게 붕어는 흐리멍청한 눈으로 껄떡거리다가 사자
후의 일갈과 함께 광채를 품은 내 칼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되었다. 근조! 붕어! --;
2
오늘도 여전히 집안 일에 치여 살다가 옛 생각에 종로
로 나서보았다. 아내는 피곤하다며 일요일에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난 외롭고 슬프다. !_!
한 남자가 친근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저
가식적인 미소를 보는 순간 난 그 사람이 쓰레기처럼
넘쳐나는 '도 판매원'일 거란 확신이 섰다.
"이미 도를 믿고 있으니 딴 사람이나 꼬셔 보십쇼."
난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였다.
"도라니요? 무슨 소린가요?"
"전 이미 태권도를 하고 있습니다." --;
그의 의아한 표정에 한방 먹여줄 셈으로 썰렁하게 하
였으나 그는 끄덕 없었다.
사실 아내가 나와 잘 안 놀아주는 이유도 내 썰렁함에
그 원인이 조금은 있기도 하니. 내 썰렁함은 친구 성
빈 이래로 최강이란 소리를 듣고 있다. --+
"전 도를 믿으라는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간단한 설
문 조사를 하려하는 것 뿐이랍니다."
그 사람이 변명하듯이 말하였기에 괜한 오해를 한 내
가 더욱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그의 설문
조사에 친절하게 응하기로 마음 먹게 된 것이다.
설문 조사는 의외로 무척이나 간단하였다. 단지 한 질
문 뿐이었다.
"당신은 색마이신가요?"
의표를 찌르는 회심의 한 방이었다. 아. 과연 난 색마
란 말인가! !_!
틀림없이 주위 사람들은 나를 나름대로 色魔라고 규정
시켜 놓아버렸다. 그렇지만 난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내 자신을 색마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가 크게 고민하고 있는 걸 느꼈는지 그 사람은 내게
도움을 주려는 듯 이야기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색마가 아닐까 하는 질문에 고
민하곤 하죠. 그건 당연한 것이랍니다. 그 누구도 색
마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놓지 않았으니 말이
죠. 자. 제가 당신께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곤 몇가지 질문을 내게 다시 했다.
"당신은 결혼은 하셨나요?"
"예."
"그런데도 다른 이성을 보면 매료되시나요?"
"예."
"보다 나은 이성을 만나게 되신다면 지금의 부인과 이
혼하고 새로운 사랑을 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흐흠...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보다 나은 이성... 보다 나은 이성... 보다 나은 이성
이라... 충분히 가능성은 있는 얘기였지만 그것에 관
해 지금까지 난 고민해 본 적이 없기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는 무시하고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부인 아닌 이성과 단둘이 있을 때 그녀를 범하고 싶
으신가요?"
"음... 예..." --;
"강간하는 상상을 하신 적이 있나요?"
"음... 예..." --;
"부인과 섹스시 다른 이성을 떠올린 적이 있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
이런 식으로 여러 개의 질문에 답을 하였을 때 그 역
시도 나를 색마라고 규정시켜 버렸다. !_!
그렇지만 난 억울했다. 그의 질문이 대개의 남성이라
면 다들 색마가 될 듯한 뻔한 질문이었기도 하거니와
난 도저히 내가 색마라는 점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
이었다. 맹목적으로.
"그렇지만 전 색마가 아님을 확신해요!"
"어째서 말입니까?"
"말하자면, 전 단지 스파게티를 요리하고 있을 뿐인걸
요. 보다 나은 스파게티, 보다 맛있는 스파게티를 찾
아 세상의 스파게티 가게를 찾아다니고, 요리책을 보
며, 또 나름대로 연구하는 것 뿐이라구요! 많은 스파
게티를 찾는 게 그 자체의 의미가 아니라 입에 더욱
맞는 스파게티를 찾기 위한 것이란 얘기죠."
난 변명하듯 말을 하면서도 조금은 내 자신의 확신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내 주장은 고립
된 내 자신의 변명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
뇌리를 스치고 있었다.
아. 과연 난 남들의 색마란 말인가! !_!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으나 난 종로 거리에서 움
직이지 못한 채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리 속엔
온통 자신에 대한 의문 뿐이었다. 색마... 색마... 색
마...
멍청히 서있는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눈길은 나를
색마라고 비난하는 눈초리 같았다. 아. 젠장! 색마라
도 좋으니 누가 좀 정확하게 가르쳐달란 말이다! 내가
과연 색마인지! 아닌지!
내 공허한 질문은 건조한 대기 위에서 빙빙 돌고 있었
다. 순간 난 아찔해졌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내 주위
에 몰려들어 내게 "당신은 색마니 나한테 껄떡대지마"
라고 외쳐대는 것만 같았다.
이런 씨펄 젠장할!
난 정말 색마란 말인가!
<EPILOG>
아무튼 난 항상 이모양이라니까. !_!
하도 할 일이 없어서 그냥 짧게 아무 얘기나 끄적이던 게
이렇게 길어져 버리다니... --;
혹시 오해가 있을 지 몰라 하는 얘기지만
난 정말 내가 색마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을 뿐더러
스스로 이 말을 함으로써 찔리고 있지도 않아! --;
뜻하지 않게 최후를 맞이하는 붕어의 심정과
뜻하지 않게 색마란 오해를 받고 있는 사나이의
그 난해한 상관관계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