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가씨는 참 억세게 삽니다. 하는 일도 많아서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
까지 아니 밤까지 하루종일 일만 하는 것 같습니다. 40kg조금 넘는 체구에
그러다가 쓰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녀는 내게 친절하진 않습니다. 지금껏 내가 알아온 수많은-과장을 좀
섞는다면- 그녀들 중 내게 가장 많이 투정하고, 나를 가장 많이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녀가 요즘 삶의 무게에 너무 짓눌려
오죽하면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속이 좁은 저는, 가끔 그녀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가끔 휙 돌아 그냥 가버리기도 합니다. 참 미안합니다.
그녀가 느끼는 삶의 무게는, 저에 비해 참 무겁다는 걸 번번히 잊어먹어서
말입니다.
그녀는 다른 남자가 없습니다. 왜 그리 자신하느냐고 되묻는다면, 그녀는
나 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좀 애석하긴 하지만, 딴 데 눈을 돌릴 시간도
없고, 제가 그녀 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핫핫핫.
하지만, 중요한 건 그동안 쌓아온 미운정 고운정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싸우고 화해하고 반복하다보니 서로에 대해 참 많이 압니다. 가끔은 정말
헤어질 상황까지 갔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함께 할 수 있는 걸 보면
그녀는 나 밖에 없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래서 마음이 놓이긴 합니다.
그녀는 해물을 못먹습니다. 가끔 전 투정을 합니다. 전 해물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식사를 할 때면, 늘 먹는 게 똑같습니다. 가끔 데리고 가서 해물탕
이라도 먹여볼까 생각해 봤습니다. 하지만, 그건 안되더군요.
식생활에 변화가 없어 밥먹는 게 똑같긴 하지만, 하나 좋은 건 돈이 별로
안든다는 겁니다. 원래 해물이 비싸거든요.
가끔 그녀가 절 보러 옵니다. 뭐 대부분의 경우, 제가 그녀를 보러 가곤
합니다. 두 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금새
어두워지고 맙니다. 그래서 자주 못봅니다. 주말에나 잠깐 보는 정도입니다.
가끔 아쉬워하곤 합니다. 하지만 뭐 괜찮습니다. 기다리는 지루함과
만남의 즐거움은 trade-off거든요.
그녀는 오징어를 좋아합니다. 적어도 말린 오징어에 국한되지만요.
오징어를 사면, 늘 그녀는 몸통만 먹고 전 지느러미와 다리만 먹습니다.
다리의 빨판이 오징어의 생식기라서 안 먹는답니다. 쩝. 맛있기만 한데
말입니다. 어쨌든, 서로 좋아하는 부위가 다르니까 오징어를 먹으면 버리는
건 없어서 좋더군요.
가끔 그녀에게 아쉬워합니다. 다른 여자에게서는 보이는 애교가 그녀에게선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도 제가 못찾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과연 애교란게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본인도 애교를 못떠니 서로 피차일반이지만
남자 맘이란 건 그런게 아닌가 봅니다.
그래도, 작은 것에서 제 배려를 해주는 모습을 나중에서야 알아채고 감사해
하기도 합니다. 그런게 사는 재미있가 봅니다.
그녀와 저는 늘 입는 옷을 입고 다닙니다. 저야 옷사는 데에 취미가 없어서
그렇다지만, 그녀는 안 그럴텐데 참 미안하기만 합니다. 만나면, 돈없는
제게 밥사주느라 바쁜 그녀라서, 자기 옷 살 여유도 못찾을 것 같습니다.
제가 밥한끼를 굶고 살 수 있는 옷은 아직 별로 못보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올가을이 가기 전에, 아니 적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 예쁜 옷이라고 사주고
싶습니다.
전 참 무뚝뚝합니다. 저 못지 않게 그녀도 무뚝뚝합니다. 제가 보기엔.
어쨌든, 두 무뚝뚝한 인간 둘이 만났으니 참 볼만하겠다 싶긴 하겠지요.
요즘 전 무뚝뚝한 걸 고쳐볼라고 노력중입니다. 작년 겨울의 제 마음 속에
있던 마음과, 중학교 2학년때의 마음을 합쳐서, 간지러운 걸 싫어하는
저입니다만, 좀 부드러워질라고 합니다. 뭐 안되면 어쩌겠습니까만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보이고 싶습니다.
얼마전에 어린이대공원에 갔었습니다. 사실 돈은 없고 해서, 지하철타고
입장료도 둘이 합쳐 2천원도 안드는 곳에 간 겁니다. 그는 그 시간을
참 좋아했습니다. 늘 만나면 술집에서 찻집에서, 음식점에서 거금을 주며
보냈던 시간보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한가로운 어린이대공원에서 저와
손을 잡고 걷는 걸 참으로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자주 그런
기회를 마련해야 겠습니다.
사는 데에는 곡선이 있게 마련입니다. 늘 직선과 같다면 무미건조한 삶에
질려 버릴지 모릅니다. 좋았다가도 싫어지고, 싫었다가도 좋아지는 게
바람직한 것도 같습니다. 뭐니뭐니해도 변곡점에서 잘 대처해 나간다면
될 겁니다. 앞으로 그녀와 저는 이런 곡선을 그리며 살 겁니다.
늘상 서로 헤헤 거리며 좋아하지도 않겠지만, 늘 다투지도 않을 겁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새로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