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내 Jita 이야기를 해야겠다. 영원히 변치 않는 여
인이란 뜻을 지닌, 하일지 씨의 소설,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속 환상의 여주인공 Jita의 품종은 걸면 걸
리는 Gulliver다. --;
그것도 그 Gulliver의 제일 처음 기종인 HGP-1100인데 요
즘은 단지 이름에서 풍기는 유치한 이미지 때문에 그 이름이
별볼일 없게 여겨지고 있지만 처음 나올 당시엔 꽤 괜찮은
평을 듣고 있었다.
지금은 "제발 절 가져주세요!"라고 호소하는 PCS 시대지만
당시엔 20만원 가량을 주고 샀어야 했기 때문에 난 이런저런
정보들을 수렴한 후 신중히 선택한 것이었다. 그때 난 동급
의 CION이나 ANYCALL에 비해 괜찮다고 판단했었다.
그 결정이 내 수신불가의 첫번째 이유인데, 사실 Gulliver
는 수신능력이 뛰어나지 않긴 하다. 그렇지만 조금 억울한
부분은 그 시절에 나온 다른 어떤 PCS라도 이 정도 성능밖에
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좋은 거지 뭐. 가끔 수신 되
잖아. 문자나 음성도 며칠이 지나더라도 반드시 들어오기는
하고 말야. --+
수신불가의 두번째 이유는 벨소리에 있는데, 역시
Gulliver의 독특한 능력인 벨소리 입력 기능 덕택에 내 벨소
리는 현재 젝스키스의 [커플]이다. 그리하여 종종 비슷한 류
의 음악이 나온다거나 시끄러운 곳에서는 잘 가늠해 들을 수
없다는 단점을 지녀 종종 전화가 온 사실을 모른 채 지나가
곤 한다. 게다가 진동 역시 내 풍만한 가슴이나 엉덩이를 자
극하기엔 그 떨림이 미약하거나 내가 불감증이고. --;
끝으로 마지막 이유는 가끔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는 때도
있다. [멈추고 싶은 순간,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허허.
아. 또 얼마 전 새롭게 달린 구피가 내 단호한 엉덩이에
깔려 허리가 부러지고 말았었는데 이번에 다시 귀여운 오리
로 변신하였다. 얼마나 버틸련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엉
덩이는 너무나 단호하다. -_-;
2. 길어진 전화통화
1년 전쯤 난 내 전화통화에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느
긋한 통신에 너무도 빠져있었기에 순간적 판단을 요구하는,
그래서 쉴 새 없이 쫑알쫑알 쏘아대야 하는 전화통화에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게다. 통신에서는 얼마간의 공백이 전
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전화통화에서는 잠시라도 침묵이 지
속되면 어쩐지 어색해지는 기분이 들어 항상 난 용건만 말해
버리곤 빨리 전화를 끊어버렸었다.
그런데 요즘은 예전에 비해 참 길게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해도, 안해도 그 대화 자체로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난 주저리주저리 이런
저런 잡담들을 늘어놓고 있는 게다.
예전 한 아이가 전화통화속 침묵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
을 때 사랑하는 사이라는 말을 내게 해준 적이 있다. 동감한
다.
매일 오후 6시면 어김없이 내게 걸려오는 전화가 있다. 바
로 이제는 짝대기 네 개를 달은 정준으로부터의 전화. --;
이 인간은 얼마나 널널한 지 매일 전화를 걸어 효리씨의 주
소를 가르쳐 준다거나 콘돔맨 따위의 저질유치찬란한 헛소리
들을 늘어놓곤 한다. 보통 이 통화시간도 꽤나 긴 편인데 사
실 그 대화의 가치를 따진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런데 그 의미 없는 대화를 통해 얻어지는 게 많다는 걸
새삼 난 깨닫고 있는 것이다. 아무 얘기라도 함께 나누면서
서로의 생활에 관심을 가져가고 이해해 가는 것. 그런 건 보
다 가까워지는 수단이라는 게다.
1∼2년 전 내 짧았던 전화통화는 경험의 부족에서 온 두려
움이 원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Communication의 수단이 컴
퓨터통신이나 삐삐 같은 여유롭거나, 일방적인 것들로 이루
어졌었기에 바로바로 무언가 준비해야한다는 건 내게 초조함
이자 두려움이었던 게다.
요즘 내 길어진 전화통화속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다
만 종종 수신이 안 된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