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변명 11

작성자  
   achor ( Hit: 198 Vote: 3 )

1.

이곳은 저장소나 다름없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가볍게 날
려간다면 난 참 아쉬워할 게다. 그래서 이곳에 모두 모아 정
리해둘 뿐이지, 간사한 박쥐가 되려는 건 아니다.

한 곳에 모두 몰아놓지 않으면 언젠가 내 기억에서조차 사
라져버릴 게다.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버리는 건 정말 싫
다. 자연스런 이별의 낭만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별,
그 자체가 애초에 슬픈 일이기에.

이곳은 저장소나 다름없다. 언젠가 떠나게 될 지도 모르는
곳의 기록들을 모두 이곳에 모아둠으로써 내 순간의 생각과
행동들을 간직해 두고 싶은 게다.

그리하여 여기, 이 땅위에 내 삶은 모조리 남겨진다.
단지 그걸 바라는 것뿐이다.











2.

사내아이는 변명하지 않는다고 하루키가 말했다.

나 역시 사내아이이고 싶다. 기분 나쁘면 따따따따 말싸움
하거나 뒤에서 욕하기 보다는 치고 받는 싸움 한 번 하고 기
분 풀고, 가끔은 부모님 속 썩이면서 나쁜 짓도 하고, 뭐 그
렇게 살고 싶다.

그리고 변명 없이 살고 싶다.

내 생각과 일치한다면 남들이 뭐라 해도 별 상관없다는 독
단에 빠져들고 싶다. 아다치의 은은한 여운, 아다치가 변명
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변명 없이 살고 싶다.

그런데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 내 생각들, 그리고 행동
들... 아직 神에 맞설 수 없는 난 그리하여 이토록 추해질
수밖에 없다.








3.

완전한 오해다. 난 그런 생각,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날
처음부터 다소 언짢은 감정이 있었긴 했지만 그 기분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게다가 난 그렇게 모든 게 끝날 줄 알고 마
음껏 지껄였던 건데 이렇게 장구한 이야기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누구라도 가끔은 첫 인상에서 실수할 때가 있을 게다. 구
차하게 그렇지 않았다며 변명을 늘어놓기 보다는 이.제.는.
그.렇.지.않.다.고 분명히 말해둠으로써 그냥 내 기분을 알
리고 싶다.

98-9220340 권아처


본문 내용은 9,292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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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08/23/2021 11:4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