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력 감축의 문제는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 정권
의 주장대로 관철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 세기 한국의 정권들이 군사력을 통해 행
하였던 것은 외세의 침략과 전쟁의 억제에 있지 않고, 민주를 요구하는 민중들을 억
압하고 탄압하는 것이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로막고 독점 자본
과 결탁한 군사 독재 정권의 유지에 활용되었다. 따라서, 북한의 침략 위협에 대비
한 군사력 증강을 주장하기에 앞서 21세기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결 과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21세기 한반도 안보의 핵심은 노동자 민중의 자유롭고 민주
적인 사회생활의 보장과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이다. 군사력 감축은 이러한 선결
조건을 완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올해 국방예산은 무려 14조 4,390억원으로 작년에 비해 약 5%이상 증액되었다. 이는
전체 예산의 증액률(4.4%)보다 높은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확고한 안보태세를 위
해 군사비 증액을 주장하지만, 군비통제 정책의 차원에서 볼 때 이는 정부가 제 국
가의 관계 속에서 평화 체제 구축 노력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냉전시대의 국가안보는 상대적인 힘의 우위를 통해 안보를 추구하는 '절대안보' 위
주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우세한 군사력을 확보하여 안보를 증진시키려는 '절대안
보'는 상대국의 같은 대응을 유발함으로써, 작용-반작용의 군비경쟁 과정 속에서 종
국에는 오히려 안보가 취약해지는 '안보 딜레마'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딜레마
를 극복하기 위하여 현재 세계적으로 '공동 안보', '협력 안보'체제가 출현하게 되
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일정한 군사력을 겸비한 국가간의 군사연합적 성격으로 한
국과 같은 제3세계 국가들의 자위 능력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와
같은 딜레마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동 안보의 개념이 아니라 '공동 평화체제' 수
립 노력이 절실하다.
■ 한미연합사 해체, 주한미군 철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주둔한다는 주한미군이 실제로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주범이라는 역설적인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지금 한반도에 주한 미군이 반드시 주둔해야만 남북전쟁을 막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
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지금의 군부다. 하지만, 과연 북한이 남한에 전쟁을 감행할
만한 여력을 갖추었는가라는 냉철하고 객관적 사태 인식을 선행하여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북한은 남한에 비해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역량에서 더 이상 경
쟁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전히 북이 먼저 침략을 할 지 모른
다고 말하는 것은 땅이 언제 갈라질지 하늘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까 대비해야 한
다는 이야기와 같다.
97년 북한의 국민총생산(GNP)는 한국은행 추계에 의하면 겨우 177억 달러이고 남한
의 97년 군사비는 170억 달러이다. 또 99년의 북한 예산은 겨우 94억 달러에 불과하
다. 예산의 30%를 군사비로 쓴다하더라도 북한 군사비는 28억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
. 이러한 군사비의 남북 격차는 한두 해가 아니라 80년부터 지금까지 누적되어 이제
는 더 이상 군사적 경쟁 대상이 되지 못한다. 육군본부가 99년에 만든 정훈교재에서
도 남북한 군의 비교를 통해 "국군이 북한군보다 체격조건에서 우위에 있고, 군사훈
련 정도에서도 물자를 아낄 수밖에 없는 북한에 비해 국군은 상당히 고도화된 훈련
을 하였고, 북한의 무기가 노후하여 전체의 절반 이상이 폐기처분 대상이라는 것이
며,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보다 10여배 이상 앞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이
자살행위를 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금강산 구경마저 자유로워진 상태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 주한미군이 철수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방위 능력은 충분히 갖춘 것으로 평가되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주한미군에
게 매년 지급된 4억달러 규모의 재정과 수십 조에 이르는 토지와 재산을 방위비와
사회 경제 활동비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제 한반도의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변화하지 않으면 안돼는 시대적 임계
시점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탈냉전 시대에 여전히 냉전 상태를 지속시켜야 할 명분
이 우리나라에도 부족하며, 미국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
하는 것은 북한보다는 21세기 동북아 질서의 중심 축으로 떠오른 중국에 대한 견제
책에 다름 아닌 것이다. 따라서 주한 미군의 주둔은 한반도의 평화보다는 동북아의
냉전적 요소를 계속 유지시킴으로써 중국의 대외 진출을 억제하고 미국의 동북아 지
배 체제를 확고히 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역설적으로 주한 미군은 한반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는 도구가 되었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견
해들이 있다. 하지만, 주한 미군의 주둔이 미친 사회적 악영향은 결코 간과할 수 없
는 중요한 지점이다.
주한 미군의 주둔은 한국이 여전히 미국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독립을 이
루지 못했다는 치욕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미군 주도의 작전권은 민
중의 이해와 무관하게 전쟁 발발 가능성을 항시적으로 담지하고 있다. 기지촌 문제,
미군 범죄, 고엽제, 훈련장 문제, 양민 학살 등 수많은 미군 문제도 어느 것 하나
주체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은 주한 미군의 주둔이 한반도의 평화 유지와
방위보다는 사회 병폐에 일익하고 있다는 역설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평화체제로의 전화를 위해 낙후한 '안보' 인식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한반도
의 평화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노력을 무엇보다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주한미군의 철수는 제 1차적 과제이다.
■ 징병제 폐지
대부분의 국민들이 건강한 성인 남자라면 당연히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하는 것이
며, 신성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 판단과 사회적 권
리와 의무에 대한 기준이 오직 '국가 안보 우선'의 통제 그늘아래 에서만 가능한 현
실은 한국 사회가 지니고 있는 모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할 것이다.
20세기 냉전 체제가 끝나고,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넘쳐나고 있지만 한반도는 여
전히 냉전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잔재의 대표가 바로 징병제이다
. 국가안보와 북의 침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아래 수십 년간 시행되어온
징병제는 21세기를 내다보는 한국의 정치, 경제적 위치를 고려치 못한 낙후한 제도
이다. 징병제의 폐지는 20세기 한반도 냉전 체제의 종식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
이자, 한국의 정치, 경제적 위치를 다시 재고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징병제의 폐지가 왜 현실적이고 당위적인 것이지를 다음에서 분명히 밝히고자 한다.
첫째, 징병제를 폐지하여도 우리 사회의 방위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근대적
기준에서 병력의 수는 군사력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현대적 기준에서 볼 때 군사력
은 정보화, 기계화, 첨단화라고 하는 테크놀러지에 달려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조
건 군 병력의 수를 현재적 수준에서 유지하려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따져보아야
한다. 실제로 군대 자체를 당장에 폐지하자는 것이 아닐 때 현대화된 군체제에 맞게
병력의 수가 조정되어야 하는 것은 냉전체제 해체 이후 대부분의 국가가 그러한 전
환을 진행하고 있듯이 그다지 급진적인 주장도 아닌 것이다. 더구나 이미 정부 스스
로가 병력 증대보다는 군사력의 현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은 병력의 수가
더 이상 국가 안보를 지키는데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징병제를 폐지하고 현재의 지원병제를 현대화된 군사체계에 맞게 인력 수급을 이루
어낸다면 실제 군사력의 변화는 거의 없을 것이다.
둘째, 징병제의 폐지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촉진시키게 될 것이다. 징병제 폐지는 냉
전적 시대 인식에서 평화적 시대 인식으로의 역사적 전환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
는 한반도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며, 동북아 질서를 군사적 분쟁 상태에서
평화적 공존 체제로 이행하도록 강제할 것이다. 북한이 징병제 폐지를 틈타 남한을
침략한다는 것은 북한에게도 명분없는 도발이며, 이에 전세계적 대응이 이루어질
것이기에 자살행위에 가깝다. 그만큼 북한은 고립무원의 상태에 놓여 있으며 징병제
폐지에 맞추어 함께 평화체제로 스스로를 강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실시하여도 방위비가 경제적 비용 면에서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징병제를 폐지하고 지원병제를 도입하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할 것
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생각하지만, 수치적인 문제가 아닌 실질적 비용 면에서 볼
때 방위비 부담은 지금과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징병제에서는 인건비 면에서
거의 들지 않는 것으로 판단하지만, 수치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 경제적 차원에서
보면 엄청난 경제 비용을 사실상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60만 명에 달
하는 청년들이 군대에 가지 않고 2년여 동안 사회경제 활동에 들어갔을 때 생산해
낼 수 있는 생산력이 고스란히 군 복무 비용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경제적 비용이 보이지 않는 군사비로 매년 지출되고 있다. 따라서, 역으로 생각해
볼 때 지원병제 하에서 필요한 인건비 증액의 부분은 군대에 가지 않는 다수의 청년
들이 내는 경제 활동 지불 비용으로 충분히 충당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징병제를 폐지하면 군대의 위화감은 물론 군의 비효율성을 사라지게 할 것이
다. 민간인 보다 못한 게 군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 것처럼 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다. 그만큼 군대가 비상식, 비합리, 비효율적 요소를 많이 담
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부대든지 테니스장을
지키는 병사가 있고, 빨래를 지키는 병사가 있는가 하면 하루종일 연병장 돌만 고르
는 병사가 있다. 심지어 맨땅을 팠다가 다시 메꾸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또한 자신의 전공과 무관하게 줄서는 대로 배속되어 자신이 사
회에서 했던 활동과 무관한 일을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나마 겨우 익숙해질 무렵
제대함으로써 군대는 언제나 아마추어적인 상태가 지속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징병제가 군사력의 합목적성 때문보다는 국민 모두의 불평부당함으로 평등화시킨 결
과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청년 세대가 군대를 애국심의 발로로 보고 찾는 경우는 극히 드물
다는 현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징병제는 오히려 국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
중시켜 왔다. 군사문화가 사회 곳곳에서 병폐로 작용하면서 사회의 계급적 위계질서
와 관료화를 만연시켜 놓았다.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채택하게 된다면 꼭 필
요한 인원만 선발하게 될 것이고, 실제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해당의 군사 업무를 보
게 됨으로써 현대화되고 전문화된 군사체계에 적합하다 할 것이다.
다섯째, 징병제를 폐지함으로써 사회 경제적 이익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앞서도 언
급하였듯이 군대에 가지 않는 많은 청년 인력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사회로 환원된
청년 세대들이 보다 자유롭고 풍부한 자기 활동과 사회 생활을 가져가게 됨으로써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유형 무형의 문화적 이익이 함께 증가하게 될 것이다.
■ 예비군제도, 민방위제도 폐지
예비군제도의 민방위제도는 분단시대, 냉전시대의 산물이다. 남한과 북한의 평화 체
제 구축 실현을 위해서는 정규군의 감축과 함께 남한의 민방위와 예비군, 북한의 노
농적위대, 붉은 청년 근위대 등 예비병력제도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
사회의 방위를 위한 체제로의 전환의 일환으로서 사회를 통제하고 전시행정과 관료
제도의 유지 자체에만 목적이 있는 예비군제도와 민방위제도는 즉각 폐지되어야 한
다.
■ 국방비 축소
징병제를 폐지하고 주한 미군의 철수만 이루어져도 지금의 국방비는 상당한 감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비용의 사회적 환원을 통해 민중들의 복지는 보다
향상 될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냉전적 '안보' 인식에 갇혀 국방비를 오히려 증액하려고 하
고 있다. 외국의 분쟁에 군대를 파병할 만큼 증대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더 이상 군사적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
방비를 증액하려는 것은 '안보'이데올로기를 통한 보수적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고,
진보적인 세력들의 정치적, 사회적 진출을 봉쇄하려는 의도와 함께 비효율적이고 방
대해진 군사 조직을 유지하고자 하는 극심한 관료적 병폐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국방비는 민중의 방위를 위한 수준에 맞게 조정되어야 하며, 불가피한 것을 제
외하고는 대폭 축소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