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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 정모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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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오만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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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임이 시간에 관해 민감하지 않음은 익히 잘 아는 바.
어차피 두목을 맡기로 한 이상 그것을 감수하는 것은 내 몫이다.
물론 내 삶의 무게로 인해 때로는 급한 성격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분위기를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나 역시 널럴하고 시간을 여유있게 쓰고 싶다.
하지만 그런 삶은 내가 대학생이 되면서 이미 물건너갔다.
이유는 단 하나.
척박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즐기기 위해서.
적어도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면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나같을 리도 없고, 그걸 강요해서도 안된다.
어차피 올 사람은 늦건 이르건 올 것이니 기다리면 된다.
이제 모두 성인인 이상, 사생활도 생각해줘야 하잖겠는가?
나 역시, 한 달에 한 번 있는 이 시간만큼은 절대 방해받고 싶지 않다.
대신 다른 시간에 곱절로 일하고 공부하면 그만이다.
그건 내 몫이고, 능력이고, 의무다.
그러나 적어도 두목이라는 입장에서 하나 더 챙길 건 있다.
어찌됐든 약속은 약속인게다.
사실 그간 쉴 틈이 없었다.
죽을 때까지 성적표에 남는 것을 각오하고 수업 하나를 철회했으면서도
여전히 나는 여유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
갈수록 뻑뻑해지는 전공 수업과
생활비라도 벌어야 하는 내 삶의 무게와
무리인 줄 알면서도 꼭 하고 싶었던 논문작업.
쉬고 싶지만 쉴 수가 없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분명 있는 거니까.
그래서 언제나 일상에 찌들려버린 나.
나는 나를 잘 안다.
그간 사실 엄청나게 무리했다.
분명 조기졸업도 무리고, 취업도 무리였다
좀 쉬면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해야 한다.
하지만 당장 식구들부터 나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았다.
그건 결국 내겐 엄청난 짐으로 다가온다.
모든 걸 다 해내면서도 버겁지 않은 전사.
결국 무리인 줄 알면서도 하는 데까지 했다.
그리고 그 무리함을 수습하느라 더욱 힘을 쓴다.
이래저래 일상은 내겐 너무나 버겁다.
남고 싶었다.
당연히 남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군대에서 휴가나온 후배까지 동원해서
조발표 보고서와 영어논문을 정리하고서야
난 정모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었다.
사탕과 아처의 생일이었으니까.
약속은 약속이다.
그간의 무리와 과로로 악화된 감기는 페이스를 더욱 떨어뜨렸고,
남고 싶었지만 난 그 자리를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사생활이라곤 안중에도 없는 어느 조원의 전화는
피곤하고 지친 내 육체의 휴식마저 망가뜨렸고,
내 점수를 지키기 위해 나를 혹사시켜 만든 발표로,
다른 이들의 점수를 올려야 했던 난 그저 참담할 따름이었다.
아버지의 수술 이후 난 사생활 자체가 무너졌다.
더욱 빨라진 시간관념 안에서 모든 걸 간섭하고 지시하려는 속성.
부모라 해도 내 삶을 뒤흔드는 건 참을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감수하고 넘어가야 하는 건 내 업인 것을.
나도 직딩들처럼 카드를 쓰고 싶다.
나도 친구들에게 거하게 술 한 잔 쏘고 싶다.
벨로르 때부터 경제적 종속이라면 치가 떨린다.
솔직히 요즘같은 구직난 속에서는 더더욱 그런 게 참기 어렵다.
그러나 아직은 그게 안 된다.
가끔은 과거가 너무나 그립다.
사진을 보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좆같아도 지금이 좋은 거다. 언제나.
그리고 보면 나도 나이를 먹었거나,
군대를 마치면서 사람을 많이 버렸다.
나도 술에 무지 약하다.
하지만 500 원샷 사건을 기억한다면 알겠지만,
삶 속에서 술을 단련시키고 있을 뿐이다.
어제도 사실 난 취하고 싶었다.
죽을만큼 취한 다음 한동안 깨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랴,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을.
함께 있지 못하여 그저 아쉬울 따름이지만.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난 좋은 편이 아니다.
그래도 어제 함께 있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약속은 약속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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