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삐] KAL858 사건 14주기, 의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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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lpi96 ( Hit: 405 Vote: 43 )


*** 중학교 시절 다 같이 반공영화라며 "마유미"를 보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보면 내가 거의 마지막 반공 교육을 받은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든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이렇게 의혹이 많다는게 때로는
너무 뻥하다. - 민석
가만 생각하면 당시 5공화국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은 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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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858 사건 14주기, 유족들이 제기하는 7대 의혹

노순택 기자 nohst@ohmynews.com

“내가 만약 김현희 씨의 변론을 맡았다면 적극적으로 ‘무죄’를 주장했
을 것이다. 김 씨가 ‘무죄’판결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 정도로 이 사건은 김 씨의 진술 외에는 입증할 만한 어떤 증거자료도
없는 황당한 사건에 다름 아니다.”

23일 서울시 중구 명동 천주교인권회관 3층 기자회견장. 115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한 ‘희대의 악녀’ 김현희(일명 마유미)에게 김형태 변호
사는 오히려 무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고 있
었다. 왜? 그것은 ‘반어’였기 때문이다.

증거를 내놓아라.
김현희의 증언말고...

‘그날’은 대통령 선거를 불과 3주일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민주’에
대한 열망이 국민의 가슴 속에서 타오르고 있을 때, 두려움에 찬 군사정
권의 가슴도 바짝 타들어 갔다.

국민의 힘으로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는 ‘희망’이 들불처럼 번져
'현실'이 되려는 찰나, 차가운 소나기를 품은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
었다.

‘1987년 11월 29일, KAL 858기 벵골만 상공에서 실종’

115명의 무고한 생명이 한 줌 재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 중동의
뙤약볕에서 굵은 땀을 흘린 뒤, 사랑하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던 노동
자들이었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북한 김정일의 친필지령을 받은 특수요원
'김현희(마유미)’의 계획된 폭탄테러였다. 나라가 발칵 뒤집혔고, 국민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또 88올림픽을 무사히 치르기 위해서라도 북한
에 대적할만한 ‘믿음직한’ 군인출신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는 수밖에 없
었다.

바레인에서 붙잡힌 김현희는 한국으로 압송된 뒤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
법원은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
ⓒ 오마이뉴스 노순택


그로부터 14년...
마유미는 살아있고, 유족들은 사건조작을 의심한다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현희는 1990년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그리고 “이젠 여자가 되고 싶다“는 선언적인 제목의 수필로 세간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간 안기부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조차
촉구하지 못했던” 유족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23일 기자회견장에 나온 유족들은 “심지어 안기부직원들에게 멱살 잡히고
욕설을 들어가며 일체의 집단행동을 방해 받았다”고 증언했다.

유족들은 최근 검찰의 조사로 내막이 드러난 ‘홍콩여간첩 수지김 사건’을
보면서 더욱 의혹을 떨칠 수 없었다. 수지김 사건이 터진 해 역시 1987년이었다.

게다가 “최근 김현희의 진위를 둘러싼 ‘월간조선’과 ‘내외저널’의 공방,
‘한겨레’ 등의 언론보도를 보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현희의 진술 말고는 이렇다할 물증이 없고, 의혹 제기에 대해
안기부(현 국정원)의 대응도 궁색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유족들의 진정을 접수한 천주교인권위원회(위원장 김형태 변호사)는 사건에
대한 재검토 및 관련자료를 통한 확인작업을 거쳐 ‘대한항공 858기에 대한
7대 의혹’을 제기하고, 정부와 국회차원의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제기한 7대 의혹을 요약하면 이렇다.
▲ 사고기가 앞바퀴 고장으로 비상동체착륙을 하는 등 기체결함으로 인한
사고가 빈번했는데도 이를 조사하지 않았다 ▲ ‘수중공명위치탐지기’를
이용한 블랙박스 수거가 가능한데도 이를 추진하지 않고 사고 10일만에
현지조사단을 철수시켰다 ▲ 김현희의 진술에 허점이 많은데도 물증수집이나
증거를 확보하지 않은 채 김씨의 자백에만 의존했다. 더구나 음독자살 시도
뒤 김 씨의 위를 세척했던 의사는 김 씨의 위에서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
다며 음독설을 부인했다. ▲ 김 씨는 탈출하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음
에도 불구하고 왜 탈출하지 않고 붙잡혔나 ▲ 당시 안기부가 제시했던 사진
속 인물은 김현희가 아니라는 주장이 각종 사진자료와 취재를 통해 제기되고
있다 ▲ 최근 밝혀진 ‘홍콩여간첩 수지김 사건’처럼 안기부는 사건의 진실
을 알면서도 수사과정에 ‘대통령 선거국면’이라는 특수한 변수를 고려한
것 아닌가.

유가족과 천주교인권위는 기자회견 뒤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본격적인
재조사촉구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오는 29일 서울 양재동 위령탑 앞에서는 14주기 추모행사가 열린다. 유족들
은 지금이라도 '진실'을 알고 있는 당시 수사관계자가 양심선언해 주길
기다리고 있다.(천주교인권위원회 02-777-0641-3)

다음은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유족들이 제기한 7대 의혹 전문.

대한항공 858기 사건 7대 의혹

1.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1월 19일 14시 미얀마의 벵골만 상공에서 방콕공항에 “45분 후 방콕에
도착하겠다. 비행 중 이상 없다”는 보고를 무선으로 보낸 것을 끝으로
소식이 끊어졌다. 이런 경우 기체의 결함에 의한 추락인지, 실종인지,
폭파인지 다양한 가능성을 놓고 조사를 했어야 했다. 실제 858기는 1987년
9월 2일 앞바퀴가 나오지 않아 비상동체착륙을 사는 등 과거에도 두 번씩
이나 기체결함으로 사고가 발생했고 사고기 출항은 고장수리 후 첫 출항이
었는데 이러한 기체결함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1-1. 858기를 통해 아부다비 공항에 내린 15명 가운데 김현희 일행을 제외
한 11명의 신원은 발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한 조사가 이뤄졌
는가? 그들 중 혹시 국제테러단체와 관련한 인물은 없었는가?

2. 비행기 사고 시 블랙박스에 대한 수색작업은 기본이다.

비행기의 블랙박스는 바닷속에서 1천도의 온도와 중력의 1백배를 견디면서
30일동안 반경 2마일에 계속해서 발신음을 보낸다고 하는데 수색작업
초기에 블랙박스에 대한 수색을 소홀히 했다. 또한 블랙박스 발신음을 추적
하기 위해서는 ‘수중공명위치탐지기’가 필요한데 당시 우리나라에 장비가
없었다면 보잉사에 장비를 요청했어야 했다. 장비없이 블랙박스를 찾을 수
있다고 본 것인가? 그리고 858기가 격추되기 하루 전 인도양의 모리셔스
해역에서 추락한 남아공의 점보기는 수심 4천미터에서 항공기의 잔해가 발견
됐고, 소련의 미사일에 요격된 KAL007기의 경우에도 1년여가 지나도 계속
부유물이 발견됐는데 858기의 경우 사고 발생 단 10일만에 현지 조사단을
철수시키고 기체나 탑승객의 유품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색작업을
중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2-1. 잔해나 유품 등 증거물이 나타나지 않다가 12월 13일 미얀마 서쪽바다
에서 25인승 구명보트가 발견됐다. 13종 50여 가지의 물품이 나왔으나 이중
공기압축펌프의 파손을 이유로 이를 KAL기 잔해라고 주장했다. 구명보트가
멀쩡한 상태에서 50종의 물품 중 공기압축펌프만 파손된다는 것이 과학적
으로 입증 가능한가? 게다가 발견된 구명보트는 펼쳐지지 않고 말려있는
상태였다.

3. 당시 안기부는 증거확보 및 확인을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1988년 1월 15일 안기부의 수사발표에 따르면 115명의 인명을 앗아간 대형
참사임에도 비행기 동체를 포함한 잔해 및 승객의 유류품 등의 직접 증거
물은 없고 오직 김현희의 진술에만 의존하여 비행기가 폭파되었다고 했다.
왜 기체나 유품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적으로 김현희의 진술에
만 의존하여 수사결과를 발표하게 되었는가? 더구나 김현희의 진술과 자백
이 사실과 다른 점이 많았음에도 당시 수사기관인 안기부는 현장조사를
게을리 하였다. 자백만으로는 증거효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수사기관에서 왜 물증의 수집이나 증거의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는
가? 김현희의 진술 외에 KAL 858기가 폭탄테러에 의한 공중폭발로 추락했
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물증은 무엇인가?

3-1. 김현희는 평양에서 모스크바와 헝가리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으로
들어갈 때 빈의 남역에서 내렸다고 진술서에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을
취재했던 프리랜서 작가 일본인 노다 미네오 씨는 김현희가 남역이 아닌
서역에서 내렸다고 주장했다. 빈의 남역은 공산권에서 오스트리아로 들어
갈 때, 그리고 서역은 서방권에서 들어갈 때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현희는 후에 자신의 수기에서 노다 씨의 주장대로 진술을 뒤집었다.

3-2. 김현희가 머물렀다고 당초 발표된 603호는 암파크링 호텔에는 존재
하지도 않았다. 또한 안기부는 김현희의 아버지가 앙골라 주재 북한 무역
대표부 수산대표 김원석이라고 발표했으나, 당시 앙골라에는 북한 무역
대표부가 없었으며 수산대표라는 직책도 없다고 북한은 공식 발표하였다.
유일한 증거가 될 지도 모르는 자백의 최소한의 신빙성조차 당시 안기부
가 확인하지 않았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3-3. 김현희가 음독 후 최초로 진찰한 바레인 살마나야 병원의 야코비안
응급부장은 마유미에게서 위세척을 해도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다며 음독
설을 부인했다는데 안기부는 서울에 도착한 12월 15일까지 음독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 있었다고 했다.

4. 김현희 일행은 왜 탈출하지 않았는가?

아부다비에서 바레인에 도착한 11월 29일 오전 4시 34분부터 12월 1일
로마로 가기 직전 음독할 때까지 이틀이라는 탈출하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김현희 일행은 탈출하지 않았다. 11월 30일부터 한국
정부와 일본정부가 호텔로 전화를 거는 등 본격적인 추적이 시작됐음을
알고 있음에도 이들은 12월 1일까지 하루동안 계속 호텔에 머물렀다.
이들을 극비지령을 수행하는 공작원이라고 볼 수 있는가?

4-1. 동양인이 드문 당시 동유럽과 오스트리아에서 한가롭게 쇼핑과 기념
촬영을 하면서 자취를 남겼고, 바레인 호텔에는 소지품을 495점이나 남겼
다. 폭탄을 놓고 내린 아부다비에서 곧바로 유럽으로 향하지 않고, 섬나라
바레인으로 간 점이나, 바레인에 로마행 비행기가 하루에 4편이나 있는데
한가하게 이틀 동안 관광을 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들이 하루 전 858기
폭파테러범의 모습인가?

5. 사진 속의 소녀는 김현희가 아니었다.

마유미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거로 당시 안기부는 김현희의 어릴적 사진을
몇 장 내놓았다. 72년 11월 평양 남북조절위원회 환영행사 때 당시 11살이
던 김현희가 남측 장기영 대표에게 꽃을 전달하는 사진이었다. 또 다른 한
장은 일본 공산당잡지에 실린 꽃을 든 김현희의 사진이었다. 그러나 안기부
가 사진 속의 인물로 지목했던 김현희는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정희선이라
는 주장이 있으며, 정희선 자신이 당시의 상황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고
한다.

5-1. 사람의 얼굴에서 귀는 성장해도 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이다. 사진을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사진속의 소녀들은 귓불
이 도톰하지만 김현희는 귓불이 거의 없는 속칭 ‘칼귀’라는 것이었다.
컴퓨터 분석 결과에서도 사진 속의 두 소녀는 정희선에 가깝다는 결과가
나왔다. 왜 안기부는 이런 오래된 사진까지 동원하며 김현희를 북한 공작
원이라고 주장해야 했는가?

6. 정부는 법으로 제시된 기간까지 어기며 서둘러 사망처리 했다.

실종유예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재판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정부가 희생자 가
족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일괄 사망 처리했다. 법적으로 사체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 일정기간(항공사고, 선박사고는 1년이상)이 지나야 사망으로
간주하는데 서둘러 사망 처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7. 최근에 발표된 1987년의 ‘홍콩여간첩 수지김 피살사건’처럼 안기부가
대한항공 858기 사건의 진실을 알면서도 수사과정에 당시 대통령 선거 국면
이라는 특수한 시국의 정치적 변수가 작용한 것은 아닌가?

7-1. 수지김 사건도 858기와 같은 해인 1987년에 발생했다. 살인을 한 윤씨
가 범행사실을 안기부 직원에게 알렸음에도 윤씨에 대한 조사와 처벌은
제대로 하지 않고 북한관련 간첩사건으로 둔갑시켰다. 다행히 유족들의
끈질긴 진상규명 노력으로 14년이 지난 최근에야 검찰의 조사로 진실이
밝혀지게 됐다. 1987년은 ‘6월항쟁’으로 민주화의 열기가 드높았고, 대통
령선거가 있었던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였다. 더구나 김현희는 대통
령 선거 하루 전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실제 대선결과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 Jacky C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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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page : http://jackyzone.wo.ro / ICQ : 40830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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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2/26/2009 00:56:26
Last Modified: 08/23/2021 11:4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