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 내 가방을 뒤진거 같아.
가방문이 반쯤 열려있었고. 지갑과 함께 있던
나의 손때묻은 공학용 계산기도 함께 종적을 감췄거든.
이런 황당할때가 ..
지갑을 잃어버려본지 어언 수년이 지났건만..
그 긴 시간이 무색하게도 짧은 10분동안 그일이 벌어지고 말다니.
일단은 여기저기 카드 분실신고 부터 하고
한숨 돌리고 있자니
기타 신분증, 수강증. 도서관 출입증. 학생증. 쿠폰.
그동안 고이 간수해온 여러매장 적립카드들이 차례차례 떠올라
하루종일 간절히 기다려온 저녁식사 시간에 밥한술 뜨질 못했다.--;
아....아....아.....병.신.
그리고 수업.
사실 오늘 하루내내 정신이 없었다.
아침은 너무 추웠고. 내몸은 무척 무거웠다.
2002년의 새해를 친구들과 함께 했다는 기쁨에 따르는
당연한 고통의 피로쯤은 웃으면서 넘겨줄수 있다던 호기는
이젠 나이를 잊은 객기로밖에 돌아오지 않는것 같아 더욱 서글펐다.
이것이 정녕 20대 중반이란 말인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무작정 집으로 가고싶기도 했다
이런날은. 그냥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
그리고 이렇게 일이 터진거야.
여전히 수업중.
신기한건. 그렇게 재수없는 일을 겪은 후로.
수업은 더욱 진지해진다. 기분도 가뿐하다.
내귀한것을 잃었다는 더러운 기분도. 차츰 맑아진다.
그리고 무소유.
이미 내 수중에 있지 않은 내 지갑속의 많은 카드들은
더이상 내것이 아니다.
과거에 비록 내삶의 많은 부분을 같이했던 그것들이라 할지라도
내추억을 만들었던 그것들이라도.
지나온 시간들을 나와 함께 보내왔던 그것들이라도.
내 소중한 그것들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과거일뿐. 더이상 내것이 아니다.
내것을 가져간 사람은.
내것으로 얼마간의 도움을 얻으리라.
적어도 그러리라 믿으며 가져갔겠지.
내것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기뻐하겠지만. 잠시뿐이리라.
불쌍한 그대여.
내 지갑의 현금은 제로였다오.
나의 신속함으로 분실신고의 기한은 단 10분.
현금써비스 쓸 시간도 없었으리라.
완벽한 나의 승리! --+
삶은 어자피 코메디야.
그렇다고 무가치한것은 절대로 아냐.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자신을 위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인간을 또 다른 인간은 자신의 의미를 위해 이용한다.
그는 기꺼이 이용당하며 또한 그들을 이용한다.
그런 인간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메멘토의 살인자는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여럿으로 늘어만 가는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그녀. 그녀를 죽인 살인자.
살인자를 찾아 복수해야하는 그의 일념. 그의 삶의 목표.
그러나 어자피 그 목표는 여전히 자신을 위한 목표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