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상 생활에서도 "빨갱이"란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쓰는데,
대부분의 반응이란 게 그 말을 들으면 얼굴이 굳으며 부자연스러워지곤 하지.
사실 그게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싶긴 한데.
수십년 동안의 금기 때문에 그런 탓이 아니겠나.
"빨갱이"는 곧 역적이요 멸문지화를 당할만큼의 중죄였으니 말이지.
그런데 단순히 문학적인 말바꾸기 차원에서 시작한 말은 아냐.
이건 박정희 정권에 대한 내 평가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결국은 한국의 보수우익이라는 집단이 가진 태생적 한계.
그 한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말이지.
사실 "빨갱이" 이데올로기를 처음 붙인 것은 공교롭게도 일제였고,
그 중에서도 도조 히데키같은 군국주의 정권에서 극렬했지.
간단하잖아. 빨갱이는 제국주의를 부정하니까.
그래서 아다시피 "빨갱이"들은 일본군에게 아주 오지게 탄압받았고,
그래서 이북에서 말하는 "독립운동사" 중에는 이 대목이 많이 나온다고.
김일성 최고의 전과로 칭하는 "보천보 전투" 역시 빨갱이들과 일본군의 싸움이고.
결국은 돈 문제란 말이지.
미국이 OSS를 통해 임정을 지원한 건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1941년 이후이고,
솔직히 그 전까지는 미국이 대한독립을 별로 탐탁히 여기지 않았더랬지.
물론 역사시간에 배운 굵직한 회담에서 한반도가 논의된 것은,
소련과 미국의 정치적 대립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었던 완충지대의 성격이었고.
돈이 없는 우익 민족주의진영에 비해,
소련이나 중공을 통해 지원받는 공산당은 형편이 좀 나았지.
그리고 그로 인해 훗날 소련과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도 하지만.
해방이 되고 38선이 그어진 뒤,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5년간 신탁통치를 주장한 건 미국이었다고.
일본만 해도 벅찬데, 한국까지는 부담이 컸지.
그래도 소련한테 죄다 넘기긴 부담스럽고, 암튼 그래서 38선 긋고.
인촌 김성수의 멋진 오보, "소련의 신탁통치 사주"는 대박이었어.
지금의 탄핵 뉴쓰만큼이나 정국을 피튀기게 만들어 놓고.
그래서 남한 땅에서 공산당(남로당)을 남김없이 박살내도록 하는,
첫 테이프를 끊지 않았더랬어?
박정희가 그 때 잡혀왔다고.
셋째 형 박상희가 남로당원이었던데다, 그가 제일 따르던 형이어서.
박상희의 죽음과 함께 박정희는 "빨갱이"로 몰렸더랬지.
결국 박정희는 전향을 하고 남로당과 관련된 인물을 죄다 불어서,
목숨 유지하고 있다 한국전쟁 중에 다시 복직이 되었지.
그 점은 훗날 5.16 이후에 미국에서 박정희에 대해 우려한 점이나,
황태성이 내려와서 북한과의 비밀협상을 추진했다는 이야기 등으로
잘 알 수 있는 이야기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내가 박정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아.
지난 번 글에서도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사고 틀.
Logique(영어로는 logic)이라 이 말씀.
한국의 근대화를 완성하고자 했고,
한국의 경제개발 모델을 setup했으며,
한국의 정치체제를 상당히 많이 실험적으로 다뤄본,
그래서 궁극적으로,
한국의 Opinion Leader를 키워낸 사람,
한국의 보수우익을 태동시킨 사람이,
공교롭게도 그 출신은 "일본군(관동군, 혹은 만군)" 출신에 "빨갱이"라.
탄생부터가 역설적일 수밖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보수 우익의 근원이,
단순히 친일부역, 친미사대의 지주출신이 아닌 것은.
6.25를 겪으면서 지주출신이 경제적으로 파탄지경에 이르러 몰락하는 대신,
당시의 신경제주의자였던 사업가가 성공을 하기에 이르고,
4.19와 5.16을 겪으면서 당시 관료계층이 상당수 몰락하는 반면,
육사출신의 정치군인과 신진관료, 그리고 외교관 출신이 득세하면서,
한국의 상위계층이 순식간에 전복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물론, 친일부역 친미사대를 지속한 이들 중에는,
사업에 뛰어들고 정치군인과 야합해 계속 천수만수를 누리게 되기도 하지만,
이 나라가 친일파 청산이 안 된 것을 감안한다면,
자연적으로 나름 많이 청산을 시킨 거라고도 볼 수 있다고.
근데 그 작업의 한 핵이었던 5.16의 주동이,
반공을 국시의 제1로 내건 주역이,
"빨갱이" 출신에 "쪽발이" 출신이라면,
먼가 웃기고 환장할 일 아닌가?
그러나 그로 인하여,
한국의 보수층은 두고두고 "빨갱이" 이야기를 우려먹게 되고,
실제론 자신들이 "빨갱이"의 하수인이었다는 이 논리적 역설을,
힘의 논리로 잊게 만들어버렸지.
학생운동권이나 민노당 이야기를 오늘은 좀 미루려고 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걸랑. 미안.
근데, 재밌는 것은,
박통이 죽고나서 등장한 신군부의 작태야.
겉으로는 유신을 없애고 박통을 지우는 듯 했지만,
실제로는 박통의 치세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면서도,
권력을 이용해 박통의 사람들을 남김없이 없애버렸지.
그 역설은 훗날 노태우가 전두환을 부정할 때도,
김영삼이 노태우와 전두환을 부정할 때도,
김대중이 김영삼을 부정할 때도 쓰였더랬지.
다시 말하면,
보수우익이라고 우리가 믿고 보고 듣는 사람들 중에서,
진정한 보수우익이라 할만한 사람들은 이미 신군부가 제거했다 이 말씀.
오원철이니 남덕우니 신현확이니 하는 관료들은 물론이요,
이후락이나 육여사 오라버니(이름이 기억안남) 같은 사람들,
5공 이후 어디 얼굴이나 드러내고 사신 거 있나?
따라서,
5공 이후의 자칭 "보수우익"은 알고보면 반은 구라다 이 말씀이지.
건전보수를 다 깔아뭉갠 그들 속에 정말 "빨갱이" 정서는 없었을까?
5공 이후 학생운동권에서 자주대오의 입지가 강해진 것은,
이 바닥의 생리를 아는 사람들이면 다 알 것이요,
그들 출신 중 상당수가 이미 국회의원에 도전했다는 점은,
자칭 "보수우익"의 건전 사상논리에 빗대어본다면,
국체를 중시한다는 국회의원의 사상성을 의심스럽게 하는 대목이며,
그러니 내가 "빨갱이"="정치꾼", "극좌"="극우"라는 등식을 세워도,
아주 이상한 소리는 아니라고.
(모르겠다. 근데 이 말 쓴다고 또 선거법 위반이라고 하는 건 아닌지, 원)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들이 무조건 보수우익이라고 주장하며,
겉으로는 "북진통일 빨갱이타도"를 외치고는 있다지만,
그 사람들의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나는 솔직히 의심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