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에 갔다. 정말 오랫만이었다. 지난 2월 모든 것을 다 포기
하고 재수를 할 생각에 찾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이미 많은 시간
이 흘러있었다. 나 또한 많이 변했다.
새로운 감회가 흘렀다. 운명이란 너무도 오묘한 것 같다. 만일
내가 그 때 재수를 결심했다면 난 지금쯤 대학이란 물에 빠지지
않은 채 공부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학교 친구들이나 칼라
의 친구들 역시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새로운 친구들
을 만났겠지만... 이런 생각들은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든다.
노량진의 뒷골목은 재수생활이 얼마나 심든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빽빽히 들어서 있는 오락실, 분식집, 술집...
이러한 것들은 내 자신감을 잃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근처 복사가게에서 지난 모의고사 문제집을 몇 권 구입했다. 내
가 과연 몇 점이나 맞을 수 있을 것인지 두려움이 앞섰다. 솔직
히 난 자신이 없다. 처음부터 6개월동안 원없이 놀겠다는 결심을
한 채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미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
버린 상태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비록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서지만 그래도 한 번 도전
해 볼 것이다.
'운명은 기회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성취하면 되는 것이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