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갓집에서... (2011-04-27)

작성자  
   achor ( Hit: 2313 Vote: 14 )
홈페이지      http://empire.achor.net
분류      사회

갑작스러운 선웅 아버님의 영면 소식을 듣고 퇴근 후 한 걸음에 달려 간다.
절을 올리고, 선웅을 위로한다.
충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얼굴이다.

수민, 민석, 문숙, 경민, 성훈.
하나 둘 찾아든다.
다들 꽤나 오랜만이다.

그간도 친구의 부모상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부모의 입장이 된 후로는 처음이었다.
어쩐지 예전과 좀 다른 느낌이 들어온다.


상례에 익숙한 친구들도 있고, 아직은 서툰 친구들도 있다.
대학 저학년 시절, 친구 부모상을 처음으로 찾았던 그 때, 상주와 맞절을 한 후 아무 이유 없이 살짝 웃음이 났던 기억이 난다.
친구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아직 그 미안함이 생생하다.
내게도 상례에 미숙했던 적이 있었더랬는데,
이렇게 익숙해 진 지금을 보면 적잖은 죽음을 지켜봐 왔구나 하는 생각은 든다.

친구들과 모여 앉아 소주 한 잔 나눈다.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도 함께 나눠진다.

예전엔 상자리에서 그저 얼굴이나 비치고 가는 정도의 단역 액스트라였다면
이제는 주연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중있는 조연은 된 느낌이다.
마치 무게 있는 상주 친구로서의 역할을 부여 받은 착각이 들어 온다.

문득 1996년 作 학생부군신위, 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당시 이런저런 상을 받았던 것 같지만 특별한 주제의식 같은 건 없었던 것 같고, 그저 상갓집 풍경을 리얼하게 담았던 영화로 기억한다.
그 시절엔 그냥 별 볼일 없는, 재미 없는 영화였는데
지금 다시 본다면 무언가 좀 더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선배들이 했던 말처럼
어느새 우리도 결혼할 때 오랜만에 보는 시기를 지나
이제 상갓집에서 보는 시기가 왔구나, 하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나는 아무 신경 안 써도 되고, 그저 따라하기만 했던,
그저 아버지의 일인 것만 같았던 세상의 일들이
이제는 점점 더 내가 주체가 되어 나, 그리고 내 주변의 일이 되어 간다.

사실은 아직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우리네 아버지, 선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쓱싹 해쳐내야 할 것만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도.

참 많이 늙었다.

- achor


본문 내용은 4,958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Post: http://achor.net/board/diary/1445
Trackback: http://achor.net/tb/diary/1445
RSS: http://achor.net/rss/diary

Share 밴드공유 Naver Blog Share Button

Login first to reply...

Tag
- : 젠장할 세상 (2001-11-19 17:10:59)- : (아처) CF모델이 된 그 아이를 보며... (2000-03-20 21:08:00)

- : 출사표 (2008-04-10 20:49:41)- : (아처) 춘천가는 기차 (2001-04-09 01:37:00)

- : 삶에 의미있는 노래를 1곡씩 골라 오늘까지 개인별로 회신주세요 (2015-04-03 10:05:12)- 인생: 인생굴곡테스트 (2010-01-13 19:19:40)

- : 의지의 한계 (2012-04-26 15:23:51)- : 일요일 밤 (2002-10-21 01:30:28)

- : (2002-02-08 07:03:54)- : 선택의 문제 (2010-09-14 00:28:26)



     
Total Article: 1963, Total Page: 273
Sun Mon Tue Wed Thu Fri Sat
          1 2
3 4 5 6 7 8 9
10 11
세상에서 가장 어..
도대체 얼마를 벌..
12 13 14 15 16
17 18 19 20
거의 모든 IT의 역..
21
인기 많은 남성들..
서태지, 이지아.. [2]
22
현대차 액센트 3D P..
23
24 25
어둡고, 쓸쓸하며,..
26 27
상갓집에서...
28
본격 신호등 만화
29
쏘울스터(Soulster)
아직 사랑할 시간..
30

  당신의 추억

ID  

  그날의 추억

Date  

  Poll
Only one, 주식 or 코인?

주식
코인

| Vote | Result |
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추천글closeo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