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한국영화 변천사 (2012-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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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263 Vote: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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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잠이 들었고, 덕분에 자정이 되기 전 깨어나 버렸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가운데 TV에선 오래된 옛 영화들이 흘러 나오고 있다.

김성수 감독의 2005년 작 야수,를 보았고,
허진호 감독의 2001년 작 봄날은 간다,를 보았고,
장선우 감독의 1994년 작 너에게 나를 보낸다,를 보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영화를 보다 보니 공교롭게도 한국영화의 변천사를 거슬러 올랐다.


1. 야수

김성수 감독은 한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었고,
이는 전적으로 비트, 탓이었다.
비트,가 나온 1997년, 그 무렵은 내가 그런 류의 영화를 한창 좋아할 만한 시기이긴 했다.

그러나 이후 나온 그의 영화들은 내 기대와 달리 대단하지 못했고,
특히 비트,의 성공 이후 커다란 기대 속에서 나왔던 태양은 없다,는 꽤나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나마 그 다음 작품이었던 무사, 정도는 즐겁게 봤던 기억이 있지만.

야수,는 비스무리한 영화를 언젠가 봤을 것만 같은, 특징 없는 영화였다.
게다가 그 결말이 후련치 못하여 영화가 실패하지 않으면 이상할 것 같았다.
오히려 이런 결말이 시나리오 단에서 걸러지지 않고 실제 영화로 만들어 진 게 신기할 정도였다.
투자회사의 담당자가 오판했거나 김성수 감독의 힘이거나.


2. 봄날은 간다

예전에도 너무 즐겁게 봤던 영화고, 다시 봐도 즐거웠다.
요즘 시대엔 더 이상 이 같은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이벤트 중심이 아니더라도 전체적인 스토리의 힘으로 영화를 풀어내고,
거기에 적절한 비유와 상징, 개연성 있는 대사 등이 결합되어 영화를 완성시켰다.
또 허진호 감독의 차분하고, 평온한, 그리고 추억 어린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

어찌 생각해 보면 사실 요즘 시대엔 자칫 지루할 수 있어 좀 맞지 않는 것 같긴 싶으면서도
깊이와 철학이 있는 이런 영화들도 여전히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2002년 일본에 갔을 때 일반 극장은 아니었고, 구민회관쯤 되는 데에서 봄날은 간다,를 상영하고 있었는데
당시는 지금과 같은 한류라는 게 있던 게 아니라서 좀 신기했었는데
오늘 보니 일본에서 투자 참여를 했었더라.


3. 너에게 나를 보낸다

동시대를 살았다면 이 영화가 얼마나 조명을 받았었는지 기억하리라 본다.
고등학생 신분이던 나까지도
당시엔 동네에 의례 자리 잡고 있던 후질구레한 동시상영관에서 보았을 정도니.

당시엔 장정일이라는 원작가도 알지 못했고,
이것이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갖고 있는 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제작사가 홍보에 사용한 가벼운 포르노그래피, 엉덩이가 예쁜 여자 정도의 문구만이 관심사였는데
그러니 영화는 별로 야하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그저그런 영화로 기억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장정일도 알고, 사회적 메시지도 알고 있는 현재, 근 20년만에 다시 본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여전히 썩 재미있지는 않더라.



졸리다, 다시 자야지.

어쩌면 세 영화 모두 아무 문제 없이 훌륭하였는데
내가 문화적으로 열정적이었던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갇혀
그 시절의 작품들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걸 지도 모르겠다.

- achor


본문 내용은 4,690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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