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사사 게시판』 38454번
제 목:(아처) 어느 멋진 날
올린이:achor (권아처 ) 01/08/31 06:45 읽음: 0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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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침 일찍 일어난 하루다. 오전부터 약속이 있어
평소 잠들기 이전 시간인 아침 7시에 기상, 나는 외출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 오후에도 외출을 하였긴 했지만 근 일
주일만에 나가본 바깥 세상이기에 모든 것이 서툴렀었다. 이
미 한참 갈 길을 가고 있을 때 아차! 향수를 안 뿌리고 왔구
나, 생각을 했었다. 면도를 하고, 이빨을 닦고, 샤워를 하
고. 오늘은 잊지 않고 살짝 향수 뿌리기.
세면대가 기울어져 있는 걸 보고 고쳐야겠다고 생각은 했
지만 방법이 묘연하여 그냥 두었다. 오늘 아침에도 기울어진
세면대는 여전하다. 조만간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질 것 같다.
세면대가 깨지고 나면 수리하는 데 더욱 큰 비용이 소요될
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천성이 그렇다.
그간 몰두해 있던 리니지는 나를 많이 황폐화시켰나 보다.
나는 이제 아하PC에 기사를 쓰지 않고, 전자신문 명예기자직
도 유명무실해졌을뿐더러 이곳저곳에서 독촉하고 있는 보수
작업들까지도 완벽하게 소위 쌩,으로 일관하고 있기에 엄청
난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괜찮다. 아직은 끄덕 없다고 생각한다.
그깟 것들이야 포기할 만하다. 나는 그런 것들보다도 내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리니지를 하고 싶다. 물론 그깟 것들이 지금 내가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만.
가게들이 문 닫기 전에 빨리 앞 슈퍼에 가서 야참꺼리를
사놔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어느새 벌써 12시가 넘어버렸
다. 길 건너 편의점까지 가야한다. 혹은 굶거나. 아. 씨펄.
씨펄?
누구는 입이 없어서 욕 안 하는 줄 알아?
어제 그 여자와 그 남자는 그렇게 이별을 했다. 나는 아무
소리 없이 그들의 이별을 지켜봐 주었다. 그 여자는 뚱뚱하
고 못 생겼으며, 그 남자는 거칠고 입이 더러웠다. 이별에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밝고 따스한 날을 기대하며 오랜만에 나선 아침 길인데 오
늘 날씨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나는 맑게 빛나는 하늘을 기
대하며 연신 태양을 쳐다봤지만 세상은 대체로 흐리다. 예상
외로 일찍 일이 끝나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부족한 수면 보
충.
참외가 떨이라며 3000원에 한 봉지 가득이다. 문득 보면서
참외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무실을 옮긴 후 마지막
으로 먹었던 사과와 복숭아를 기억해낸다.
이별은 그렇게 한 순간이다.
사랑은 마치 한 여름 밤의 꿈처럼 내 2001년의 여름을 뜨
겁게 달궈놓곤 훌쩍 떠나버렸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날
씨가 느껴진다. 이제는 마음 한 구석 또한 서늘해질 것을 알
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세면대를 고쳐놓을 걸 그랬다. 언
젠가 살짝 이별을 예감했었음에도 나는 역시 아무런 대처를
해놓지 않았었다.
떠난 사람은 아무렇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남겨진 내 주위
엔 온통 그 향기가 배어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짙어져
간다. 주방에 가도, 화장실에 가도, 방에 앉아있어도. 온통
함께 했던 흔적밖에 남아있질 않아 나는 난처해진다.
그럼에도 나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후회할 걸 알면서도
기울어진 세면대를 그냥 방치할 것이고, 언제나처럼 하루종
일 리니지 속에서 내 역할을 묵묵히 수행할 것이다. 졸리면
잘 것이고, 배고프면 먹을 것이며, 그런 시간들을 제외한다
면 나는 잡념 없이 지금의 내 할 일인 리니지에 몰입할 것이
다.
한 여름 밤의 꿈이었다고 일방적으로 치부해 버려도 나는
상관없다. 나에겐 함께 찍은 사진이 있고, 함께 했던 공간이
있으며, 그리고 함께 했던 기억들이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으
니 말이다.
누구보다도 내게 잘 해준 그녀에게
이제는 다른 길을 가겠지만 영원한 행복이 깃들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다면
참으로 고마웠다고, 덕분에 행복했다고
꼭 전해주고 싶다.
잘 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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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졸렸으면서도 자야지, 자야지 하면서 별 이유 없이 조금 버텼더니 새벽이 다가옴에도 말짱하다.
그리하여 오랫만에 커피 한 잔을 끓여놓곤 KMTV를 틀어본다.
요즘은 월드컵 중계를 보느라, 또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느라 이런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미 깨어져 버린 세면대는 여전하다.
그 몰골 그대로 방치된 채 그는 1년을 버텨간다. 대견할 뿐이다.
리니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달라진 걸 느끼지 못한다.
무의미한 반복이라고 생각, 한다.
오늘은 사실 심심했다.
나는 혼자서도 잘 노는 착한 어린이지만
함께 있다 홀로 되면 외로워진다.
요 며칠 멤버들과 오랫만에 같이 살았더니 그런가 보다.
오늘은 혼자 있다는 사실이 외로웠고, 쓸쓸하였다.
그리하여 사랑을 해야한다면 나는 자신이 없다.
나는 아직 나를 떨쳐낼 자신이 없다.
사랑이라는 것, 생각할수록 암담한 일이다.
지난 번 술자리에서 한 친구는 내가 했던 이야기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며 풀어놓는다.
어딘가 한 명의 자신과 꼭 맞는 사람이 있기에 그를 찾아다녔지만
그는 이미 만났을 지도 모른다는 그 이야기를,
누군가 더 꼭 맞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에 세월을 소요하였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미 다른 이의 반려자가 되어있는 그가 자신의 운명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일.
나는 그것이 두렵다.
내 운명의 여인을 이미 만났다 헤어졌을 지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한다.
이제는 다시 괜찮아진다.
시간이 조금 흐르니 나는 다시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진다.
누구랑도 이야기하지 않고, 누구랑도 웃지 않으며, 그저 혼자 떠들어대는 TV를 들으며 조용히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상념들을 행동으로 옮겨보는 것.
이것이 내가 외로움을 즐기는 방법이고,
외로움에 익숙해질 때는 오히려 누군가와의 접촉들이 방해로 느껴진다.
나는 다시 내 궤도를 찾아가는 듯 싶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반복일 지도 모른다.
술 한 잔 마시고 싶은 밤이다.
혼자 술 마시는 일은 어쩐지 알콜중독자처럼 느껴져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상대방과 대화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괴로움을 잊거나 슬픔을 삭이거나 고민하는 일 따위는 술 없이도 할 수 있을 만큼은 강인한 편이다.
희노애락 정도는 쉽게 아무렇지 않은 듯 감당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때로는 지겹다.
불분명한 관계들의 연속이 답답하고,
무슨 감정이든 내색하지 않아야 하는 심적 의무가 귀찮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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