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나이 (2003-07-21)

작성자  
   achor ( Hit: 1723 Vote: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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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1.
며칠 전 일이다.
처음으로 이곳, 유배지를 홀로 나섰던 날.

약속 시간 맞출 것이 간당간당 하여 분주하게 유배지를 나설 때
갑작스레 인삿말이 들려왔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맑고 밝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좀 어리둥절 하며 소리의 진원지로 시선을 옮겼는데
그곳에는 좀 어려보이는 듯 했지만
전형적인 아줌마 패션을 완비한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어쩌면 내가 렌즈를 끼고 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녀를 무시한 채 지나쳤을 지도 모르겠다.
2-3m의 거리에서도 상대방 눈동자 위치를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는 시력을 나는 갖고 있지 못했기에.

그러나 렌즈를 낀 내 시선과 인사를 한 그녀의 시선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즉 그녀는 아마도 내게 인사를 한 것이리라.

그렇지만 당황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
나는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걸음을 늦추며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녀는 그런 내 심정을 읽었던지

'옆집 사는 사람이에요.' 라고 잠시 후 덧붙여 줬다.



2.
이것은 기어이 내게도 이웃이 생기고 말았다는 사실을 이야기 해준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대학로에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신림동에서.
홀로 살아간 지난 7년 동안 내게 이웃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옆집 사람들과 마주치는 법이 없었으며,
그들 또한 나를 알고 먼저 인사를 건네지는 않았다.
나는 완전히 주위 사람들과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굳이 내 성격을 파탄적이거나 대인기피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주위 사람들과 생활하는 시간이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 큰 이유가 되겠고,
또 근본적으로는 내가 주위 이웃들과 안면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도 커다란 한 이유가 되겠다.

지금 또한 마찬가지다.
인사를 해야만 하는 이웃이 생겼다는 것은 역시. 꽤나 불편함으로 느껴진다.

그 아줌마들은 또 다른 주위 아줌마들과 모여 쑥덕쑥덕 내 패행적인 삶을 까댈 지도 모르고,
또 괜히 맛난 걸 했으니 같이 먹자며 내 대문을 두드릴 지도 모른다.

내가 이웃에게 바라는 것은 괜한 인삿말이나 맛난 먹을 것이 아니다.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명확하다.

너희들이 시끄럽게 굴지만 않는다면 나는 너희들의 삶에 조금도 개입할 의사가 없으니
너희 역시 내가 너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내 삶에 조금이라도 개입하지 말아다오.

그것이다.

물론 쌈박한 미혼 여성이 옆집에 산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



3.
신림동에서 살아가는 게 어느덧 벌써 5년이 되어 간다.
친구들이 많아 정착한 신림동이
이제는 내게 소속감을 요구하는 듯한 것만 같다.

동네 친구들과 포장마차에서 술도 마시고, 함께 PC방에 몰려가 단체로 게임을 하기도 하며
동네에서 소일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꼭 동네 조기축구회에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나서는 아저씨가 되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동네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다면 달려 나가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 하기도 하고,
동네 친구들과 술 좀 마신 다음 동네 치안이 시급하다며 무슨무슨동 주민방범대를 조직하기도 하는
동네 사나이!
그런 아저씨 말이다.

아. 안 된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
옆집 아줌마든, 동네 아저씨든. 뭐든 용납할 수 없다! 불끈!
나는 세기말을 앞둔 우울함을 가지고 외롭게 살아야 하건만.
아. 동네 아저씨라니. 끙. --;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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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 유치원을 시작으로 오후 2시 피아노, 오후 3시 태권도... 픽업을 다니며 가족의 일상을 경험한다. 바쁘다, 바뻐. 픽업 나온 친구 어머니들과 학원 선생들의 어색한 눈빛을 뒤로 하고, 단지 내 들어 선 장터를 찾는다. 핫바며,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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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09/06/2021 17: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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