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EIC 시험을 보고... (2004-01-18)

작성자  
   achor ( Hit: 1294 Vote: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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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개인

TOEIC 시험이 있던 날.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TOEIC 점수가 필요하여 어쩔 수 없이 시험 신청을 하긴 했지만
이미 지난 몇 차례 신청만 한 채 시험 보러 가질 않아
전날 밤부터 다소간의 압박을 받은 상태.
게다가 이번은 졸업 전 마지막 TOEIC 시험이 아니던가.
(아. 2월에도 시험을 보는 것 같지만 예상대로 까먹은 채 접수를 안 했다 --;)
어쨌든 합격을 예상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도 시험을 안 본다면 정말 후회할 것 같더라.

그러나 그런 압박 속에서도 사실 잠든 시간은 새벽 4시 경.
3시간 남짓 수면을 취한 후 무사히 기상하여 고사장인 봉림중학교로.

그간 공부한 바 없는 내가 컴퓨터용 연필을 갖고 있을 리 만무.
계획으로는 학교 앞 문방구에서 하나 사 가면 되겠지 했건만
봉림중학교 앞은 문방구를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

결국 시험 본부 같은 델 찾아가서 연필이 없다고 지급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자신들도 연필이 없다며 묵살 당함.

어쩔 수 없이 맨손으로 배정받은 교실로 들어가
주위의 착해 보이는 한 여학생에게 연필 하나 대여 받음.

운 좋게도 내 자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인
창문쪽 맨 뒷자리.

시험이 시작되기 전 그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어떤 이는 문제집을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요약해온 메모를 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더라.
나는 모두가 바라보이는 그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인간 군상을 관찰 중.

그런데.
TOEIC 시험 보는 애들은 원래 이렇게 물이 구린 건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30명 정원에 반 조금 넘게 입실했던 그 학생들 가운데
예쁜 여자는 없더라.

이런 규모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예쁜 여자가 단 한 명도 없을 줄이야.
감히 단언하건대, 이는 내가 겪어본 규모 대비 최악의 물.

시험 결과는 궁금해 하지 말지어니.
생각해 보라. 잘 봤을 것 같냐? --;

다만 한 가지 핑계를 대자면
정말 좆나게 추웠다는 것.

발가락이 언다는 게 몇 년만의 일이던가.
열 발가락이 모두 얼어 터지려고 하더라.
이런 추위, 이런 추위에 기인한 고통이 도대체 몇 년만의 일이더란 말인가.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데다가 가뜩이나 겨울을 가장 싫어하는 내게
이 추위는 대략 낭패.

나는 심지어 이 시험 자리를 박차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결심까지 하고 있었으나
답안작성지 한 구석에 적혀있는 문구,
...의 경우 2년 간 시험 자격을 박탈합니다,

젠장, 2년간 TOEIC 시험을 보지 못한다면 졸업도 2년 늦춰질 것이고,
아. 그럼 내 나이 몇에 대학 졸업을 한단 말이냐.
너는 내게 영어를 테스트 하려는 게냐, 인내심을 테스트 하려는 게냐.
그러나 참자. !_!
그래, 터져라, 발가락아, 터질려면 마음껏 터지려무나.
그러나 참자, 참자, 참자. !_!

시험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심지어 눈까지 내리고 있더라.
이런 미친.
내가 오늘 오랫만에 외출했다고 겨울이 자신이 지닌 모든 공력을 다해
내게 추위의 극한을 맛보게 하려나 보다.

언젠가는 추위가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가슴을 펴고 몸을 투명하게 한다는 느낌으로 추위 앞에 바로 섰었던 것도 같은데
이제는 오직 집으로 돌진.

아, 좆나게 춥네.
세상이 이토록 추웠구나.

- achor WEbs. a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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