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이어리가 권한제로 변경된 이후
나는 레벨업을 신청한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권한제의 기본 취지가 어떤 사람이 내 다이어리를 보는가 궁금했기 때문이었으므로 나로서는 당연한 조치였다.
물론 그렇다고 공언한대로 전화통화를 통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사실 레벨업을 신청한 사람은 몇 되지 않으므로
그것이 내겐 번거롭거나 귀찮은 작업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나와 직접적인 연락이 끊긴 사람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어서
때론 새삼 즐거운 일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은 대개 나와 각별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친한 친구라든가, 옛 애인이라든가 혹은 기타 등등.
여하튼 이들은 내가 충분히 알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던 게다.
그러나 며칠 전 기어이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바로 H양이 레벨업을 신청하였던 것이다.
2.
H양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홈페이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분명 나와 가까운 사람일 것인데
그런 사람의 이름을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다.
난 H양의 정보를 살피기 시작한다.
- 77년 생이란다.
그렇다면 젊었을 때 만났을 가능성이 크겠다.
- 명륜동에 산단다.
그럼 학교 친구인가?
- 취미는 사진이고, 예술을 널리 퍼지도록 노력하는 아이란다.
어랏? 당시 우리 학교엔 예술 관련 학과가 없었는데.
정보를 봐도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3.
그러나 가장 유력한 건 내 학교와 연관이 되었을 거란 사실이다.
명륜동에 살면서 성대에 다니지 않는 젊은이를 본 적이 없다.
오류를 범한 가능성은 농후하지만 역시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을 기억해 보는 게 가장 현명할 것 같다.
다시 생각을 해보지만 H양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러 가정을 해보자.
(1) H양은 성대를 통해 만난 대학 친구이다.
이 경우는 77년 생, 그리고 명륜동 산다는 것은 쉽게 가능성을 갖지만
마지막 예술 부분이 좀 모호하다.
그러나 사진을 취미로 갖고 있고 예술을 좋아하는 타 학과 학생들도 많으니 가장 가능성은 있겠다.
(2) H양은 성대에 예술학부가 생긴 이후 입학한 동년배이다.
이 경우는 77년 생, 명륜동, 예술.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긴 하지만
별로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예술학부 친구가 있었다면 나는 정재환이나 김미화 등 뭐 그런 연예인들을 본 적이 있냐고 물어봤을 텐데 그런 기억도 없다. --;
(3) H양은 그냥 명륜동에 사는 예술을 좋아하는 77년 생이다.
이를테면 다미는 명륜동과 가까운 혜화여고를 나왔으면서도 성대를 다니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 했듯 정말 명륜동에 살면서 타 대학을 다닌 사람은 본 적이 없다.
(4) H양은 우연히 내 홈페이지에 처음 들어왔는데 그냥 신청을 해봤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 --;
정말 어쩌다 보니 내 홈페이지에 왔는데 우연하게도 77년 생인데다가 명륜동에 사는. --;
4.
결과를 궁금해 할 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결국 H양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냈다. ^^
인터넷이라는 곳은 워낙 많은 정보가 넘실거리는 곳인지라
원한다면 얻을 수 있고, 두드리면 열리는 곳이 아니던가.
나는 심지어 H양이 어떻게 생겼으며,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와 친하다는 등의
아주 세부적이고, 개인적인 정보 뿐만 아니라
어떻게 내 홈페이지에 오게 됐는지까지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H양에 대한 답은
어쩌면 이 글을 볼 지도 모르는 H양 자신을 위하여 굳이 밝히지 않도록 하자.
그녀가 원한다면 스스로 답을 줄 것이니.
5.
아.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이곳에 회원가입을 한 너희들,
적어도 이곳에서 개인정보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정말로 너희들의 비밀번호와 주민등록번호는 암호화 되어 나조차도 전혀 알 수 없고,
또 별로 요구하는 정보도 없을 뿐더러
게다가 그 각각의 정보들은 비공개 설정이 가능하니 알아서들 조절하면 되겠다.
- achor WEbs. acho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