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하던 날의 기록

작성자  
   achor ( Hit: 1614 Vote: 57 )
분류      독백

* 이 글은 예전, 사무실을 이전하고 며칠 후 적어둔 글인데,

* 당시 쓰던 컴퓨터를 지금까지 방치해 두었다가

* 이제서야 발견하고 올려놓습니다.

* 역시 이른바 기록 보존의 의무감,에 의하여. ^^;



달력을 슬쩍 본다. 어느새 4일이나 흘렀다.

새로운 사무실에서의 삶은 사실 조금 쓸쓸한 편이다.

외출도 거의 하지 않는 데에다가

인터넷도 되지 않고, 또 TV도 없으니 외부와는 철저한 단절이다.

심지어 일반전화도 없는데 휴대전화까지도 잘 안 터진다. --;



나는 이 자그마한 공간 속에 틀어박혀 홀로 시간과 투쟁한다.

대개는 잠을 자고, 그렇지 않으면 네트웍을 전혀 지원하지 않는

고전 게임들로 소일거리 하는 정도다.

그래도 심심하면 가끔 책도 보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렇지만 음악은 항상. 잠을 잘 때도. 가벼운 외출을 할 때도.



내내 별 생각 안 하다가

8월 3일이 되어서야 짐을 추스리기 시작하였는데

생각보다 짐이 많이 나와 적잖이 놀랐었다.

지난 1999년 11월 말부터 2001년 8월 초까지.

22개월의 시간을 보내며 내가 쌓아온 것들.

그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는 증거였다.



yahon이 제일 먼저 와 짐을 대충 빌딩 앞에 내려놓기 시작했고,

vluez도 도착하여 거들었지만 오기로 한 satagooni와 suncc는 묵묵부답.

집에서 침대를 싣고 온 용달이 도착할 즈음에 satagooni는 왔다.



새 사무실 위치를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앞 보조석에 탔었지만

사실 나 역시 다른 이들처럼 뒤, 짐들 위에 올라 타고 싶었었다.

특히 satagooni.

나는 그가 짐들을 쌓아놓은 가장 높은 공간에 홀로 앉아

시원한 바람에 긴 머리카락을 휘날릴 때

거북선 위에서 호령하던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다. --+



마치 영화 속 장면과 같았다.

우리는 신세계를 찾아 항해를 떠나는 모험가였다.

바야흐로 신림5동 신사옥에서의 삶!



도착하여 짐을 풀고 있을 때 vluez와 satagooni는 사라졌다.

다시금 yahon과 나의 고전은 시작. --+



yahon은 일을 참으로 잘 한다.

한때 '못 하는 게 없는 성훈'으로 불렸던 그 답게

그는 짐의 이동에서 청소까지, 배치부터 정돈까지

너무나도 완벽하고 성실하게 나를 도와주었다.



yahon과 힘겨워하며 정돈까지 끝마쳤을 때!

사라졌던 vluez와 satagooni는 suncc와 함께 등장.

양손에 가득 필수용품들을 가득 들은 채로.

경찰청 작업으로 한몫 두둑히 챙긴 vluez가 무리를 좀 했나 보다.

물론 satagooni의 철저한 감독 하에. ^^;



keqi가 오고, young이 왔으며 마침내 ceaser까지 등장하니

드디어 헤네시XO의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

꼬냑 중에서도 고급인 헤네시.

그 중에서도 최고급인 XO.

무엇이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으리.



한 잔밖에 못 마신 헤네시XO의 맛은 참으로 깔끔하였다.

그렇지만 가시 없는 장미는 없는 법.

헤네시XO는 모두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새벽 5시 경, 술자리가 접힌 그 시간 살아남은 사람은

나와 ceaser뿐.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vluez와 조금 마신 suncc 역시 존재하긴 하였다만.

천하의 주당으로 소문난 yahon과 satagooni를 극복해 낸

ceaser를 치하하고자 나는 그녀에게

칼사사 3대 주당 타이틀 중에 하나인 '불사신'을 넘겼다.



그렇게 대망의 첫날 밤은 마감을 하였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인터넷이 안 된다는 건 내게 있어서 정말 치명적이었다.

나는 비단 일뿐만이 아니라 거의 생활을 인터넷을 통해 하고 있었는데

막상 인터넷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치명적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휴대전화.

016은 잘 터지더만 대체로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하는 011이

신사옥에서는 유독 고전이다.

전화가 잘 안 되니 일 문제도 그렇고,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데에도 장애가 크다.



끝으로 가전제품.

심심할 때 TV라도 보면 그나마 낫겠는데,

TV도 안 나온다. 아. 젠장.

엄밀히 말하면 안테나선은 들어와 있는데 준비해 간 TV카드가 고장났나 보다.

그리고 냉장고.

냉장고가 없으니 식량을 전혀 보관할 수가 없다.

나는 이곳에서 100% 라면만 먹었다. 라면, 정말 지겹다. !_!

세탁기.

아직은 빨래 하는 게 그리 싫지는 않지만

나중에는 싫어질 게 분명하다.

냉장고가 제일 급하고, 그 다음이 TV, 그 다음이 세탁기.



컴퓨터는 벌써 3대나 있다. 곧 1대가 더 생길 예정이기도 하다.

세팅도 끝나있다. 인터넷만 되면 된다. 아. 젠장. !_!



돈은 없다.

예전에는 주식이 짜장면일 정도로 짜장면 먹는 건 껌이었는데,

요즘은 돈이 없어서 짜장면 한 그릇도 못 사먹는다.

맨날 굶다가 도저히 못 참겠으면 라면이다. 정말 빈곤하다. 아. 젠장. !_!



- achor WEbs. achor 200108080852

본문 내용은 8,603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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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Last Modified: 03/16/2025 19:3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