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ie님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지금은 열정이든 자신감이든 혜안이든.
모두 잃어 annie님으로부터 '흔들리는 자화상'에 대한 따끔한 충고를 받고는 있습니다만
사실은 저 역시도 언젠가는 아주 자신감이 넘치는 소년이었답니다. ^^;
중학생 시절에는 제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저 멍청한 어른들 보다도 훨씬 더 제대로된 정치적 신념을 표출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입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게임 대항해시대처럼 거대한 무역상인이 될 자신감도 있었고,
펀드매니저로서 시장을 지배하는 원대한 꿈을 안고 경제학과에 입학을 꿈꾸기도 하였지요.
대학생 시절에는 인터넷을 장악하는 압도적인 사이트를 만들어낼 자신감이 있었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좀 우습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때는 그랬답니다. ^^;
조금 더 살아봤다고 제 경험이 annie님의 그것보다 풍부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제 사유의 시간들이 annie님의 그것보다 깊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고요.
다만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것들 또한
쉽게 흔들리고, 변하게 된다는 사실이지요.
이 명제 또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변할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현재의 확신은 스스로에 대한 고삐밖에 되지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도 그닥 무서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상황이 닥친다 하여도 그 극한을 생각해 보면 결국 죽음이더군요.
곧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버릴 수 있다면 세상 그 무엇도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은 적어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
그렇지만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지 못한 불행은 좀 무서울 것 같기도 합니다.
1.
'만족'을 이야기 하자면 저는 지금까지의 제 삶에 대체적으로 만족하고,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다시 살더라도 지금처럼 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 들어 생각하는 것은,
제 자신이 자기만족에 너무 익숙한 건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사실은 더 크고, 더 완벽한 행복이 어딘가에 존재할 지도 모르는데
저는 완벽한 운명론자로서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그것에 쉽게 만족하고, 정체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저의 이런 성향은 삶의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며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 젊음이 남아있다면 어울리지는 않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지금은 생각하고, 꿈꾸는 것들에 대하여 겁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이 제격인 것 같고,
그리고 그 마지막 기회인 것 같습니다.
곧 천상천하 유아독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제 삶의 주체자로서 살아가고는 싶고,
그것은 결국 삶이 궁극적으로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한 반증일 지도 모르겠네요.
2.
자유와 안정성은 상호배반적이 아니기에
어쩌면 지금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면서도 일을 잘 해낼 수 있다면 안정성까지도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혹은 저에 대한 과신입니다. --+
저는 티 없이 게으르고, 나태하여 주어진 자유를 자율적인 상태에서 효율적으로 소비할 수 없는 노예근성을 타고 태어났습니다.
이상적으로 본다면야 자유로운 안정성이야 말로 최고의 방향이겠습니다만
그간의 삶에서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깨달은 바입니다.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책임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제가 부여받은 책임은 전적으로 저에 관한 것뿐이었습니다.
배고프면 굶으면 됐고, 추우면 떨면 됐고, 슬프면 울면 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결혼할 부인을 위하여, 태어날 자식을 위하여, 그리고 연로해 가시는 부모님을 위하여
해야할 일들이 느껴집니다.
날로 자유의 폭은 적어지는 가운데 더 큰 안정성을 찾아야만 하니
그것의 조율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실패하고 물러납니다만 annie님은 부디 자유로운 안정성을 획득해 내시길 기원합니다.
3.
제 친구들 중에도 고시생은 정말 많답니다.
고등학생 시절 반의 8%가 '세계로 가는 장학퀴즈' 주장원이었던 위업처럼
고등학교 친구들의 한 20% 가량은 고시생에 몸담고 있답니다. --+
덕분에 조언도 많이 구하고 있고, 도움도 많이 받고 있지요.
고시가 제 기호로부터 벗어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간 제가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저는 진심으로 공부를 하고 싶고,
이왕 할 공부라면 그것이 최대한 치열하기를 갈망합니다.
몇 차례 예를 든 친구들,
그들 또한 노는 데에는 결코 빠지지 않는 놈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시간이 흐른 후에는 공부하고 싶다는 결심을 자발적으로 하게 되었고, 그리고 공부를 했던 것처럼
저 역시도 비슷한 마음가짐입니다.
또한 학창시절 수학을 좋아했기에(정말입니다. --;)
아직은 잘 모르지만 세무쪽 공부를 한다면 법전을 외우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고요.
곧 단지 안정성만을 위하여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니옵고,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더러 그것이 최대한 치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커다란 도전의 과제를 만들려는 것이지요.
(물론 그 도전이 완수의 자신감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
4.
저는 가끔 학교에 가곤 하는데
그럴 때면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듣는 학생이랍니다.
그것이 경제학이든, 신문방송학이든, 컴퓨터공학이든, 전파공학이든.
처음 접하는 이야기라도 꽤나 흥미있게 느껴지고, 무언가 배우고 익혀가는 그 기분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대학 공부를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만
그럼에도 저 역시 소시민적인 인간인 지라
이왕 하는 공부라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막대한 부를 꿈꾸지는 않습니다.
다만 부가 제 자신을 옹졸하게 만들거나
또는 먹고 살기 위해 삶의 여유도 없이 살아가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5.
무엇을 하더라도 나름의 효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TV를 보거나 잠을 자거나 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천정만 바라본다 하여도
그것들 또한 삶에 괜찮은 의미를 준다고 믿습니다.
다만 문제는 사회적인 효용일 것입니다.
TV를 보는 대신 영어를 공부하면 사회적으로 보다 효과적일 것처럼
정확한 수치에 의해 계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상식적인 수준에서 예상 가능한
시간 소비의 효용은 어쨌든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을 하는 것은 그간 제 삶의 가장 큰 문제이기도 했는데
그 동시다발적인 일들을 모두 제대로 치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라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한 번에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더군요.
그러나 이번에도 잠정적인 결론은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하는 대신에
일을 하면서 고시공부를 좀 하고, 가끔 학교에 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으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6.
앞으로 5년이라면... 헉. 제 나이가 몇인데. --+
나이와 시간에 얽매여 결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이 역시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여전히 삶의 소중함을 알고 있던 많은 인생의 선배들이 나이에 쫒겨 결혼했던 것처럼
그들보다 잘난 것 없는 제가 예외일 수는 없겠지요.
일 혹은 공부와 연애는 상호배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도 삶의 자유나 안정성만큼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7.
웃기지는 않습니다만 사진은 좀 보고 싶네요. ^^;
아. 그러나.
외모지상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외모를 중시하는 제 성향을 본다면
아마도 annie님의 사진이 흡족하지 않을 경우 슬퍼할 것입니다. !_!
보지 않을렵니다. --+
아. 그래도 보고 싶다. --+
외모에 자신 있다면 보여주십시오. --+
웃기죠, 저 원래 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