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 열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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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hor ( Hit: 1935 Vote: 125 )
분류      잡담

최근 아침까지 술 마신 일은 비일비재 하였지만

오늘처럼 신림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밤새 술 마신 건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아. 그렇지 않군요.

얼마 전 홍대에서 밤새 술 마신 적이 있군요.

어쨌든 말입니다. --;



제 삶을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런 적이 있긴 있었을 것인데

이상하게 마치 처음 겪는 일처럼 느껴지더군요.

오늘 새벽 5시 30분 경

종로3가에서 신도림까지 지하철 1호선 수원행을 탔었답니다.



대체로 새벽 첫 차를 타면

힘차게 삶을 살아가는 도시 노동자의 모습이 느껴져서

술 마시고 돌아오는 제 자신에게 좋은 채찍이 되었었는데

오늘 그 수원행 열차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7-80년대에 돌아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차 자체도 50년대 産과 똑같은 규격의 70년대 産처럼 보였을 뿐더러

그 열차 속에서 저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우중충하고 너저분한 모습이었습니다.



모두들 삶이 피곤한지 굳게 눈을 감은 채로

유명 상표 비스무리한 글자가 굵게 쓰여져있는 커다란 가방을 안곤

일요일 새벽 열차임에도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빽빽하게 앉아있었습니다.



간혹 제 나이 또래의 젊은이의 모습도 보이긴 했지만

한낮의 거리에서 봤다면 아주 멋있었을 그 노란 머리도

이상하게 우울하게 느껴져 왔습니다.



돈 많은, 함께 술을 마신 여인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떠났는데

그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이래저래 생동하는 사람들의 투박함도 좋아합니다만

엘레강스한 그녀는 틀림없이 이런 분위기를 싫어할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도림역에서 내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다시 2호선으로 갈아탔습니다.



2호선은 훨씬 한산하였습니다.

유독 눈에 띈 사람은

아버지와 등산을 떠나는 젊은 여성이었답니다.



나이는 저보다 한 두살 많아 보였는데

성격 좋아 보이는 아버지와 단 둘이 떠나는 등산 여행의 모습을 보니

육체적으로도, 또 정신적으로도 참 건강해 보여 좋았습니다.



저 역시 학창시절에는 아버지와 함께

낚시 여행을 참 많이 떠나곤 했었는데

대학 이후로는 아버지와 여행을 떠난 기억이 나질 않더군요.



그리고 한 기독교인을 보았습니다.

대림역 즈음에서 열차에 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여 내게로 오라며 역설하는

백발머리에 깔끔한 검정색 정장을 차려입으신 그 노신사에게서는

평소와 달리 반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근본을 기독교로 하고, 불교에 환상을 갖고 있는 제게 있어서

거리의 기독교인들이 반갑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거든요.



그렇지만 그 노신사는 어쩐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힐끔힐끔 쳐다봤었더랬죠.

그는 주일에는 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고 하느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복을 얻는 길이라고 했죠.



어제 참 날씨 좋았던 기억도 나고 해서

오는 아침에는 교회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답니다.



그리고 돌아와 이렇게 앉아있습니다.

어느새 날이 밝아가고 있네요.



이제 평온한 일요일 아침이 오겠습니다.

일요일 오전은 평화롭고 여유로운 느낌이 들어 참 좋아합니다.



다음 주에는 요즘 생겨난 봄바람에

적당한 보복을 해줘야겠습니다.

물론 이번 주가 시작될 무렵에도

술 좀 줄이고, 일 좀 해야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만.



어쨌든 다시 한 번 결심해 봅니다.

두고보자. 봄바람!

다음 주에는 결단코 작살을 내주리라! 불끈!



요즘 봄바람이 들었답니다.

유혹해 주세요. 훌쩍. ^^v



- achor WEbs. achor

본문 내용은 8,780일 전의 글로 현재의 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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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11/06/1999 04:17:00
Last Modified: 03/16/2025 19:3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