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토의를 하고 어느새 맞이한 아침.
밥탐을 놓쳐 고픈 배를 달래며, 곧 도착할 아침밥을 기다리며 몇 자 적어봅니다.
요즘 요새던전 때문에 저렙 탱을 좀 해보고 있는데
지난 밤의 요새던전 레이드는 그 탱하는 묘미를 제대로 주더군요.
힐러가 없어 엘더 1인으로 갔던 그 지난 밤은 꽤 어려움이 예상되긴 했었지만
막상 생각보다는 쉽게 풀어나가고 있었습니다.
3번의 레이드 중 1,2차를 무사히 끝내고
마지막 3차.
부하 없는 단일레이드몹이 나오더군요.
힘들겠구나 했지만 생각 외로 쉽게 해나갔습니다.
그러나 1인 힐러의 엠도 반 이상 유지되고 있었고,
몹의 피는 5밀리 정도 밖에 남지 않아 모두가 긴장이 풀려있던 그 순간,
몹이 미치더군요. -__-;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학살하는 통에
피를 줄여 사냥하던 위자드 분들이 먼저 횡사하셨고,
그 과정에서 1인 힐러의 엠도 모두 소모되어 고렙 엘더마저 사망. -__-;
힐러가 사망하니 학살의 카니발이 시작되었습니다.
걸리면 죽는 그런 상황이었죠.
모두가 죽고 살아남은 자는 블댄과 네크, 엠이 모두 빠진 하펀과 그리고 저.
학살을 끝낸 레이드몹은 드디어 다시 탱인 저를 보기 시작합니다.
힐을 더이상 받을 수 없는 상태.
얼터는 이미 소진됐고.
물약을 빨며 캐릭이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본다는 건
그간 단검을 하며 순간에 사망을 겪던 경험과는 분명히 다르더군요.
죽어가고 있는 순간이었지만,
곧 차가운 바닥에 쓰러질 걸 알았지만
장렬히 전사하는 듯 싶어 왠지 모를 뜨거움이 가슴 속에 느껴졌습니다.
이제 몹의 피가 2밀리 정도 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 때까진 버틸 수 없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조금만 더 버텨준다면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반드시 우리의 목표를 달성해 내리라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런 가슴 속의 뜨거운 확신 속에서 서서히,
최후를 맞이해 가는 모습은 그것이 비록 서서브 캐릭의 모습이라 할 지라도
스스로 장엄하였고, 장렬하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의 목표를 위해 자신의 생을 희생한다는 것,
내가 못 이루더라도 남은 자들이 이뤄낼 것이라는 그 믿음은
개인주의가 만연한 현세의 제게
매우 새롭고 독특한 경험이었던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매우 힘든 사냥의 과정이지만
탱하는 매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신규컨텐츠가 많이 나와
그간 패턴적으로 행동했던 것과는 달리
고민하고, 고심하고, 착오를 겪으며 도전해 가는 재미가
제겐 매우 대단하게만 느껴집니다.
이것은 다 우리가 함께 있기 때문에 가능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작은 칼사사 시절엔 신규컨텐츠가 나온다 해도
그것에 도전해 보기 보단 과거에 익숙해진 방법으로 동일한 행위를 여전히 반복했었으니 말이지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함께 도전하고, 고민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우리를 위해 쓰러져 가는 것이 희생이 아니라 희망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 ach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