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미 슈퍼스타즈의 감사용 투수를 모델로 한 영화 "수퍼스타 감사용"이 개봉될 예정이다. 물론 나같이 야구를 (단, 하는 건 말고 보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재밌다고 하겠지만 이 영화에는 남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감사용 투수에 대한 내용이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원래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인천을 연고지로 했던 구단은 삼미 슈퍼스타즈가 아니라 현대였다. 그러나 서울을 MBC에 내준 현대는 야구단을 설립하지 않기로 뒷통수, 정권은 야구에 관심이 많던 삼미 김 회장을 갖은 양념으로 충동질해 야구단을 설립한다. 그래서 나온 야구단이 삼미 슈퍼스타즈.
어느 기자의 칼럼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게임에서 이기면 관중들한테 특수강 파이프 1m씩 줄 수도 없는 노릇, 소비재가 아닌 생산재를 만드는 삼미의 기업 속성상 프로야구단은 무리였건만.
아무튼 짧은 기간동안 '고교야구의 연장선상'이었던 국내 프로야구에서 '평범한 고교야구'적 게임을 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감사용 선수는 최초의 이력을 많이 갖고 있다.
국내 최초, 유일의 사회인 야구인 출신 투수.
국내 최초의 자유계약선수(FA)
국내 최초의 자유계약에 따른 이적선수.
그 전까지 몇 년동안 한 번도 승이 없었던 삼미특수강을 사회인 야구에서 리그 4연패의 금자탑을 쌓게 했던 삼미특수강의 감사용. 그는 구단의 예산 부족으로 좌완 투수를 영입할 수 없었던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유일한 좌완으로 눈부신 피칭을 한다. 비록 승수는 단 1승 뿐이지만, 국내 프로 최초의 원투펀치인 박철순(우완), 선우대영(좌완)의 OB에 맞서 수많은 경기를 버텨낸 것만으로도 그는 철완의 범주에 들어갈만 하다.
사회인 야구 출신 투수로서 평범한 게임만을 한 것은 아니다. 그가 기억하고 있다는 유일한 게임, OB와의 어느 경기에서 그는 7회부터 15회까지 거의 9이닝을 완투한다. 그 게임에서 삼미는 2:4로 뒤지고 있다가 극적인 동점 홈런으로 4:4로 결국 연장까지 갔지만 무승부. 당시 투수력에 있어서는 프로구단 최고였던 OB에 맞선 대단한 게임이었다.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나,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나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시놉시스가 하나 있다면, 감사용은 항상 패전처리 전문투수였지만, 실상 그는 패전처리와 선발을 오가는 전천후 투수였다. 삼미에는 좌완이 그 말고는 없었기 때문에. 그가 패전처리 전문 투수로 자리잡은 것은 '너구리' 장명부와 임호균이 제 몫을 다 했던 1983년 이후다. 적어도 1982년, 그는 삼미에서 제일 바쁜 '만만한 투수'였다. 그래서 그는 승은 거의 없지만 무는 많았다.
2. 아테네 올림픽이 끝났다. 양태영 선수와 폴 햄 선수 간의 오심 논쟁도 뜨거웠고, 일방적인 폴란드 주심의 편파판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선전한 여자 핸드볼도 감동적이었다. 막판 그리스 선수를 극적으로 KO시킨 태권도나 중국을 16년만에 격파한 남자탁구도 그랬고.
그러나 다소 이해하지 못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남자축구에 대한 태도다. 아시는지는 모르겠으나 남자축구가 8강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스포츠정신은 한 마디로 수준 이하였다. 0:3으로 말리에게 질 때, 수비는 완전히 뚫려버렸고 밀착방어는 온데간데 없었다. 3:3으로 극적으로 비기고 난 뒤 약 20분간의 게임은 한 마디로 졸전이었다. 히딩크가 포르투갈에게 1:0으로 앞선 뒤에도 얼마나 공격적으로 전술을 풀어갔는지를 생각한다면, 체력안배라는 것은 준비소홀이라는 핑계 외엔 다름 아니다.
파라과이와의 8강전. 그 경기는 새벽 3시, 현지 시각으로 밤 9시에 열렸다. 그리고 그 경기가 있기 수 시간 전, 한국은 여자 핸드볼이며 하키며 각종 경기 예선 경기가 치러지게 되어 있었다. 솔직히 그 시간, 어느 방송에서 여자 핸드볼이나 하키 등을 중계했는가? 모든 방송사에서는 "오직 축구 이야기 뿐"이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참으로 많이 벌였다. 광고비 때문이라면 그것도 핑계다. 말리와의 경기에서 그 정도의 체력이라면 8강에서는 더 볼 것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말 그대로, 축구는 졸전 끝에 패했다. 히딩크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너무 망극할 따름이었다.
여자 핸드볼 결승전, 수 차례의 동점 랠리, 2차 연장에 이은 승부 던지기(페널티 스로)에서 우리는 덴마크에게 무너졌다. 캐스터는 앞으로 좀더 핸드볼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방송국 스스로가 핸드볼에 관심이 없는 것을. 이미 한국이 그렇게 버티고 있는 것이 정말 기적일 뿐이다.
핸드볼 큰잔치에 인기가수를 데려와 개막식을 하고, 추첨을 통해 외국산 전자제품을 주는 것이 핸드볼을 진흥시키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끊임없는 투자를 통한 구단 육성과 선수 발굴, 국내 리그가 부족하면 외국 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만한 체력과 기술력의 확보, 그리고 무엇보다 끊임없는 관심. 그것이 먼저다.
3. 야구에서 요즘 병역문제로 한창 시끄럽다. 경기 중 덕아웃으로 체포조가 급습, 경기 중이던 선수를 연행해가는 등의 생 쑈가 벌어지고 인기구단의 선수 중 상당수에 혐의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안 보던 스포츠찌라시를 뒤져 누가누가 잡혀가고 누가누가 혐의가 있는지도 알아보는 중이다.
왜 선수들이 군대를 두려워하는지 나는 알 것도 같다. 좁디 좁은 상무의 벽을 넘지 못한 채 현역에 입대한 사람들은 원하는 운동은 하나도 하지 못한 채 되도 않는 작업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다보면 기량도, 체력도 훨씬 다른 선수에 비해 현저히 나빠지는 것은 당연한 생리. 그리고 제대 후엔 그저 그런 평범한 선수로 전락한 다음, 결국엔 야구계를 떠나야 하는 것.
서용빈, 정민태 등 무수한 선수들이 병역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역시 그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철저한 자기관리가 뒷받침되는 현역생활은 훗날의 선수생활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은 또한 많은 선수들의 예로써 알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병역문제를 이런 식으로 어두운 방법을 통해 해결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로 인해 얼마나 더 많은 선수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해야 하는지, 프로야구 역사 20년이 넘는 이 나라에서, 아직까지 그런 문제 하나 해결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참담할 따름이다.
앞으로 스포츠 경기를 가능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가 볼까 한다. 엘리트 스포츠로 인해 병들고 허약해진 이 나라 스포츠의 무궁한 발전과, 운동 밖에 할 줄 몰랐던 지극히 착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운동선수들의 미래를 위한 조그마한 투자로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