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처) 끄적끄적 90 0005 (2000-06-25)

작성자  
   achor ( Hit: 3575 Vote: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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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끄적끄적

『칼사사 게시판』 36807번
 제  목:(아처) 끄적끄적 90 0005                         
 올린이:achor   (권아처  )    00/06/25 10:45    읽음: 11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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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는 나는,이란 말을 자주 쓰고 있다.
        나는,이란 말은 느낌이 좋다.
        나는,하고 말하는 것은
        대화 속에 슬며시 여유를 부여해 주고,
        끈적끈적한 재즈향이 피어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요즘 나는 섹스,란 말이 싫어졌다.
        섹스,란 말은 무언가 찢어지는 느낌이 난다.
        섹스.
        섹,의 강한 액센트와 스,의 길어 찢어지는 입모양이 싫다.

        나는, 섹스를 좋아한다.
        나는 섹스,를 싫어한다.
        어색한 조합은 좋다. 단 균형이 있어야 한댄다.
        그래픽디자인의 거장, 폴라 셰어가 이르기를.
        섹스는 노동 이외의 그 어떤 의미도 아니라는
        소녀의 말을 상기한다.


        항상 끄적끄적,을 끄적거릴 때는
        너무도 많은 양에 짜증이 날 지경이었는데
        지난 5월에는 하나 밖에 있질 않아 나조차도 놀랐다.
        게다가 6월이 거의 가고 있는 이제서야
        그것도 우연히 끄적끄적 0005,가 없음을 발견해 냈다.


        여기저기서 머리를 자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꿋꿋한 장발이다. 이제는 완연한 장발이다.
        나는 장발이 좋다.
        적당히 빗어넘긴 장발에게서는 느끼한 냄새가 나서 좋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당신은 순정이 없어요.
        문학은 한 마디로 유치하다. 문학의 현실왜곡이 싫다.


        홍차는 분위기가 좋지만 맛이 없다.
        그렇지만 맛있는 홍차도 있다.
        다만 찾기 힘들 뿐이지.
        2000.6.24 19:37 종로2가 JAZZ Cafe ELLE

        홍차도 사랑과 같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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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아처/] 5월                                                 
 올린이:achor   (권아처  )    00/05/25 21:31    읽음: 20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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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의 햇살이 참으로 따사롭다.
    오히려 어색하게 후덕지근한 게 마음에 든다.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를 연상케 하는 이 텁텁함이 괜찮게 느껴진다.

    아침부터 약속이 있어 서울의 부둣가를 찾았다.
    30분이 지나도록 사람이 오지 않는다.
    기다리며 워크맨이나 갖고 다닐 걸, 하고 생각한다.
    가방에는 두툼한 컴퓨터 서적들과 이런저런 서류들만이 가득하다.
    새삼 변화를 느끼며 살짝 웃는다.

    몇 해 전 5월에는 친구들과 그냥 거리를 걸었었다.
    대학로에서 인사동까지, 인사동에서 남산까지, 그리고 남산에서 신촌까지.
    우리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집에 가지 않은 채 대학 들판에서 잠을 자곤 했었고,
    잘 마시지도 못하던 술에 취해 싸움박질해대곤 했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어리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그런 추억이 있기에 5월은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했다.

    오전 10시 30분, 날씨는 오후처럼 뜨거웠지만
    아직 문을 연 가게는 그닥 없다.
    몇 곳의 문 닫은 가게에서 허탕친 후
    허름한 선술집 비슷한 곳에 마주 앉는다.
    나무문에 떨어질듯 걸린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광경이 시원하다.
    갈매기 소리의 환청을 듣는다.

    나는 내내 잠을 못 자 아주 피곤하였다.
    그래서 줄곧 듣기만 했고, 그 사람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얘기들을
    연신 늘어놓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듣는 척 했지만 인공의 소리는 허공에 날리고 있다.

    나른하고 노근한 분위기가 좋다.
    허름한 선술집이 찬란한 바 보다 나는 마음에 든다.
    얼빠지게 바카디를 마시기 보다는 처량하게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고 싶다.
    서구문명에 대한 엘레강스한 환상이라면 나는 없다.

    장진 이야기를 듣는다. 일발장진, 장진.
    그를 추겨세우는 이야기는 가끔 활자를 통해 본 적이 있지만
    체감하지 못했는데 막상 듣고 보니 조금 놀랍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사실 조급해 진다.
    나는 언론매체에서 인터넷이나 벤쳐 관련 소식을 듣는 게 싫다.
    그럴 때마다 조급해 지는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과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의문에
    자신이 없다.
    충족되지 않는 공복감에 이것저것 덤비고는 있지만
    나는 사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나이 22살.

    나는 막대한 돈을 갖고 싶지도 않고,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싶지도 않다.
    단지 문화가 되고 싶을 뿐이다.
    문화를 느끼며 生을 마감지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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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ritten: 09/27/2001 13:51:56
Last Modified: 09/06/2021 17:51:19